2010년 10월, 당시 김황식 국무총리가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지하철 무료 승차를 제공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발언해 논란이 됐을 때 한 후배가 들려준 이야기다.
지방 농촌에 살고 있던 부친을 서울로 모시고 왔는데 무료로 지하철을 타본 부친이 “처음으로 세금을 내는 보람을 느낀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그런데 돈을 내고 타자는 이야기가 나오니 탐탁지 않아 했다. 후배 부친의 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고, 사실 노인 지하철 무료 승차에 세금이 직접 투입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 게 민심이었다.
지금의 무상복지는 지하철 무료 승차 수준이 아니다. 2010년 이후 무상급식, 무상보육, 기초연금 확대 등 주요 무상복지 정책에 들어간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이 40조 원을 넘는다. 고등학교 무상교육 등 아직 이행하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 확대 공약들도 남아 있다.
최근 연말정산을 둘러싼 논란은 무상복지의 부메랑이라는 분석이 많다. 각종 복지정책을 비롯해 국가가 써야 할 돈은 늘어나는데도 경기가 좋지 않아 세금 수입은 줄어들고 있다. 국가가 지출하는 만큼 수입이 들어오지 않으면 빚을 낼 수밖에 없다.
지난해 말 예산정국에서 누리과정 논란이 대표적 사례다. 무상보육에 필요한 재정이 모자라자 결국 일부는 지방채를 발행해서 충당하고, 일부는 국고에서 우회 지원하는 것으로 하고 넘어갔다. 빚으로 메우는 것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라는 기조를 포기하지 않다 보니 증세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증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로서는 주머니에서 세금이 더 나가면 증세다. 연말정산에서 환급해주던 항목을 줄인 것이나 담뱃값을 인상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면 복지를 줄여야 할까. “줬다가 빼앗으면 엉덩이에 뿔난다”는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의 지적처럼 한 번 확대한 복지정책을 축소하려면 국민의 반발을 각오해야 한다.
아니면 세금을 늘려야 할까. 이번 연말정산 논란에서 보듯 세금 문제는 폭발력이 강하다. 그렇지 않아도 여권 지지율은 떨어지는 상황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민심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여당으로서는 진퇴양난이다.
그렇다고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이대로 방치하는 것은 직무유기다. 여당이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무상복지 확대 공약을 앞세워 표를 얻은 만큼 그 책임도 져야 한다. 일부 새누리당 의원도 ‘증세 없는 복지’ 기조의 재검토를 주장하고 나선 만큼 김무성 대표와 새로 선출될 원내대표가 당과 정부의 뜻을 모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문제는 시기다. 어떤 방안을 마련하더라도 야당과 타협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본격적인 총선 국면에 접어들기 전에 서둘러 대책을 내놓는 것이 그나마 정부 여당의 부담을 줄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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