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엽서는 체코의 플젠(영어명 Pilsen·필젠)이란 도시 모습이다. 프라하 서쪽 90km쯤에 있는 공업도시다. 체코가 ‘보헤미아’라고 불리며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19세기에는 교역의 중심이었다. 독일 바이에른(바바리아) 주와 이웃한 데다 유럽의 동서남북으로 사통팔달하는 좋은 위치 덕분이었다. 그 플젠에서 공업이 발달한 것은 1869년 에밀 스코다라는 엔지니어가 ‘스코다 워크스’라는 공장을 세우면서부터. 무기를 만들어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제공했는데 제1차 세계대전 중엔 제국 내 최대 무기산업체로 성장했다. 현재 생산하고 있는 자동차, 선박용 엔진과 비행기, 기관차는 그 유산이다.
그렇지만 엽서를 가득 채운 굴뚝과 공장은 스코다가 아니다. 도심을 감싸 안고 흐르는 라드부자 강변의 맥주양조장 ‘필스너 우르켈’이다. 그림엽서란 특정 장소를 알리는 홍보물. 그런 만큼 그곳의 자랑거리를 담기 마련이다. 이 엽서를 보면 플젠의 자랑은 ‘맥주’임에 틀림없다. 그건 플젠, 아니 이곳의 맥주 역사를 알고 나면 수긍할 만하다. 근 1만 년에 이르는 인류의 장구한 맥주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맥주가 바로 여기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투명한 황금빛깔에 가볍고 상큼한 맛의 ‘라거’가 그것이다. 라거가 이곳에서 첫선을 보인 건 1842년 10월 5일. 바로 ‘필스너 우르켈’이다. 이 맥주는 세계 최초의 라거라는 명성 덕분에 브리티시오픈 골프대회의 유일한 공식 맥주로 지정됐다. 라거는 가장 보편적으로 소비되는 맥주다. 하지만 필스너 우르켈이 나오기 전만 해도 세상엔 모두 텁텁하고 묵직한 맛에 칙칙한 빛깔의 ‘에일’뿐이었다. 라거의 독특한 맛과 색은 섭씨 4도의 저온에서 장기간 발효시키는 ‘하면발효’의 산물이다. 상온에서 단기간 ‘상면발효’(알코올 발효를 발효조 상단에서 진행)시켜 만드는 에일과는 정반대다. 어쨌든 이날은 인류문명사에 한 획을 그은 날이었다. 맛없는 맥주로부터 인류가 해방되었으므로.
그런데 필스너 우르켈의 탄생 이면에는 눈길을 끄는 사건이 있었다. ‘맥주혁명’이라고 부를 만큼 인상적인 플젠 시민의 집단봉기다. 때는 라거가 탄생하기 4년 전인 1838년. 형편없는 맥주 맛에 성난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맥주 36배럴(5724L)을 하수구에 쏟아 부었다. 맛있는 맥주를 마실 권리를 주장하면서. 이렇게 해서 ‘시민양조장’ 건설이 시작됐고, 4년 후 그 양조장에서 라거 맥주, 필스너 우르켈이 탄생했다. 플젠의 양조 역사는 1295년 왕이 시민 260가구에 양조권을 주면서 시작됐는데 19세기 당시엔 이들이 조직한 길드가 맥주를 공급했다.
라거 개발자는 바바리아에서 초빙해온 요제프 그롤이란 독일 젊은이였다. 그는 지하대수층에서 뽑아 올린 연수(軟水·미네랄 성분이 적은 물)에 지역 특산 맥주보리와 독일어로 ‘고귀함’을 뜻하는 ‘자츠(Saaz)’란 호프를 넣어 ‘하면발효’ 공법으로 새로운 맥주를 만들었다. 그날 시민들의 눈과 입을 감복시킨 것은 투명한 황금빛과 상큼함. 이후 지구촌으로 퍼져 나간 것은 당연지사. 인기가 폭발하자 양조장마다 라거를 만들고 ‘필센’ ‘필스’ ‘필스너’ ‘필제’란 이름을 붙였다. 지금도 여전하다. 필젠이 라거의 대명사가 됐기 때문이다. 상품명 ‘라이방’이 선글라스를 대표하는 것처럼.
맥주에 관한 불편한 진실 하나. 반(反)환경의 ‘지속가능하지 않은 술’이란 것인데, 만드는 데 물이 많이 들어가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50년 전엔 맥주 한 병을 만드는 데 물 열두 병이 필요했다. 열한 병의 폐수를 발생시켰다는 뜻이다. 지금은? 3.5병까지 개선됐지만 첨단양조장에서나 그렇지, 아직도 다섯 병을 오르내린다고 한다.
최근 한 맥주회사가 36년간 79억 원어치의 남한강 물을 퍼다 쓰고도 사용료를 단 한 푼도 내지 않아 비난을 샀다. 원인은 행정기관의 착오였고 사건은 맥주회사가 물값(2009년부터 2년 치 12억2000여만 원)을 납부하며 일단락됐다. 그럼에도 뒷맛은 씁쓸하다. 물이 국가 자원임을 모르지 않을 터인데 물값을 거두지 않는다고 해서 36년 동안 공짜로 썼다는 게 마뜩지 않아서다. 많은 물을 허비하는 환경역행의 상품을 양산하는 기업이라서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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