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냐고 할지 모르지만 청와대는 공직사회에서 ‘기피 대상 1호’라고 한다. 청와대 전화를 받고 인사 대상이 되면 ‘박근혜’ 꼬리표가 붙을까 봐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피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3년 차에 붙는 꼬리표는 2년 뒤에 ‘주홍글씨’로 바뀔 수 있다. 전임 이명박(MB) 정부의 ‘꼬리표’ 때문에 현 정부에서 인사에 불이익을 받았다는 입소문이 이런 우려를 부채질했다. 대통령 지지율이 곤두박질칠수록 이 같은 분위기는 더 가속화할 것이다. 박 대통령이 회의 때마다 깨알같이 지시를 해도 공직사회의 반응이 미지근한 이유다.
박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은 이미 40% 안팎의 심리적 마지노선이 무너졌고, 30% 바닥을 치고 있다. ‘정윤회 동향’ 문건에 이어 김무성 수첩 파문 등 여권 내 암투(暗鬪)를 다룬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데, 청와대는 먼 산 쳐다보듯 하니 지지율이 온전하다면 이상할 것이다.
지지율이 무너지면 공직사회는 잔뜩 몸을 움츠린다. 공직사회가 움직이지 않으면 집권 3년 차의 거창한 공약은 ‘빛 좋은 개살구’ 신세가 된다. 공직사회를 추동하는 동력이 대통령 지지율이다. “올해는 전국 단위 선거가 없으니 지지율에 개의치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일부 여권 인사들은 순진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무지를 드러낸 것이다.
지지율 붕괴로 박근혜 브랜드에 기대 왔던 여권의 허약 체질이 그대로 드러났다. 일부에선 “여론조사에서 여당 지지율이 대통령 지지율을 추월했다”고 의미를 부여하지만 여당 지지율은 워낙 존재감이 없는 야당과 비교하면서 생기는 착시(錯視) 현상일 뿐이다. 당청은 한 묶음으로 추락하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자기 스타일이 강한 박 대통령이 요즘 들어 바뀌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면 지지율 추락을 일회성으로 보지 않은 결과다. 원내대표 임기를 3개월 남겨둔 이완구를 국무총리 카드로 징발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박 대통령의 승부수일 수 있다.
이완구는 충청권(충남 부여-청양) 정치인이다. 정치권에서 충청권은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2012년 대선후보 박근혜가 충청권에 기반을 둔 선진통일당(옛 자유선진당)과 새누리당 합당을 밀어붙인 것도 충청권 굳히기 전략이었다. 그 결과 충청권에서 문재인을 앞섰다. 이완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겠지만 ‘충청 총리’는 충청권 대망론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
역대로 충청 총리는 복잡한 정치 게임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김종필(JP)은 김대중(DJ) 정부 총리로서 ‘호남+충청’ 연합의 한 축이었다. DJ의 뒤를 이은 노무현은 충청권 수도이전 카드로 JP를 붙잡았다. 당시 충청권에서 이회창을 이긴 것은 대선 승리의 견인차가 됐다. MB 정부 시절 ‘정운찬 총리’ 카드는 박근혜를 자극했다. ‘충청권 대망론’이 ‘박근혜 대세론’과 충돌한 것이다. 결국 박근혜는 MB의 세종시 수정안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당시 이완구는 충남지사직을 던지며 박근혜와 함께했다.
흔히 대통령이 되는 순간부터 여의도의 탁류(濁流)를 멀리하려 한다. 거대담론을 붙잡고, 역사와 대화를 하겠다고 나선다. 진심을 몰라주는 여론과 정치인들이 야속하다고 느끼면서 청와대와 여당은 긴장 관계에 들어선다. 박 대통령이 ‘정치인 총리’, 그중에서도 ‘충청 총리’ 카드를 꺼낸 것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반전을 모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과는 두고 봐야겠지만 당장은 내년 총선, 길게는 2년 뒤 대선까지도 염두에 둔 것이다. 야당이 먼저 이완구 총리 카드에 깔린 함의를 읽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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