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이 영화에 숨겨진 교훈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9일 03시 00분


존 윅
제아무리 후진 영화라도 빛나는 교훈 한 줄을 발견할 때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18년 동안 ‘썸’을 타온 남녀가 결국 사랑에 골인한다는, 듣기만 해도 지루해 미쳐버릴 것만 같은 내용의 로맨틱코미디 영화 ‘오늘의 연애’(14일 개봉)에서도 딱 한 가지 교훈이 있다. 바로 ‘서울여자 조심하라’다.

여기엔 잘나가는 여성 기상캐스터 현우(문채원)가 등장하는데, 이 여자야말로 남성들이 경계 또 경계해야 하는 서울여자의 전형이다. 순진한 체하면서 실제론 여기저기 냄새 폴폴 풍기고 다니며 남자들 착각하게 만든 뒤 취할 건 다 취하는 자가 바로 이 여자. 여자를 어릴 때부터 짝사랑해온 준수(이승기)는 현우가 유부남과 모텔을 들락거려도, 유부남에 차여 술 먹고 난장판을 부릴 때도 그저 그녀의 곁을 돌부처처럼 지키는데, 이것이야말로 여성이 ‘슈퍼갑’인 요즘 남녀관계의 축소판이요, 제목 그대로 ‘오늘의 연애’인 것이다.

연애에서 신세대 여성의 ‘갑질’은 어렵잖게 목격된다. 여자친구가 카카오톡 프사(프로필 사진)에 새로 나온 카스텔라 케이크를 올려놓은 뒤 ‘아, 먹고 싶다’고 한 줄을 달면? 휴전선에서 경계 근무하듯 여자친구의 프사를 수시로 체크하던 남자친구는 30분 내로 똑같은 케이크를 사다 바쳐야 한다. 동성친구가 새로 산 후드집업의 사진을 여자가 프사로 올린 뒤 ‘부럽다’고 한 줄을 올리면? 남자친구가 사흘 내로 이걸 사주지 않을 때 여자는 남자친구가 자신과의 헤어짐을 각오한 것으로 간주한다.

다음은 SBS 코미디 프로그램 ‘웃찾사’의 ‘서울의 달’ 코너 중 최근 한 대목. 서울에 먼저 올라와 자리 잡은 선배가 자신을 찾아온 세상 물정 모르는 경상도 시골총각 후배와 나누는 대화는 배꼽을 잡게 만들면서도 서글프다.

“니(네)가 서울여자랑 백화점에 갔다. 여자가 다섯 바퀴째 그냥 돌고 있다. 이때 쇼핑을 끝내는 방법은 뭐겠노?”(선배) “그냥 저 혼자 가뿌리면(가버리면) 여자가 따라오는 거 아입(닙)니까?”(후배) “아니다.”(선배) “그럼 뭡니까?”(후배) “아까 여자가 만지던 걸 사줘야 된다.”(선배) “예에?”(후배) “그럼 서울여자랑 걷다가 여자가 다리가 아프다 칸다(한다). 이때 너는 어떻게 해야 되겠노?”(선배) “업어줘야 됩니까?”(후배) “아니다.”(선배) “그럼 뭡니까?”(후배) “편한 구두를 사줘야 된다.”(선배) “예에?”(후배) “이번엔 서울여자가 ‘저거 예쁘다’고 하면 니(너)는 어떻게 해야 되겠노?”(선배) “그냥 바로 사주면 되는 거 아입(닙)니까?”(후배) “아니다.”(선배) “그럼 뭡니까?”(후배) “몰래 사줘야 된다.”(선배)

‘오늘의 연애’의 교훈. ‘서울여자를 조심하라.’

이번엔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액션영화 ‘’(21일 개봉). 이토록 믿을 수 없을 만큼 단순무식한 영화가 또 있을까? 어둠의 세계에서 손을 씻은 주인공. 죽은 아내가 유품처럼 남긴 소중한 강아지를 러시아 조폭들이 죽이자 이에 격분한 주인공이 조폭 소굴을 혈혈단신 찾아가 다 죽여 버린다는 얘기가 전부다.

영화 ‘테이큰’의 아버지(리엄 니슨)는 딸을 납치해 간 인질매매 조직에서 딸을 구출하겠다며 조직원들을 모조리 죽이면서 북한스타일 ‘백배 천배 보복’의 진수를 보여주었지만, ‘존 윅’에 대면 명함도 못 내밀 지경이다. 주인공은 조폭 70명쯤을 각종 현란하고 잔인무도한 방식으로 파리처럼 죽이는데, 아무리 생각 없는 킬링타임용 영화라고 해도 개에 대한 복수치고는 너무 많은 인간을 ‘개처럼’ 죽이는 게 아닌가 말이다. 이것은 반려견을 목숨만큼 사랑하는 현대인의 자화상?

‘존 윅’의 교훈적 메시지. ‘인명경시(人命輕視) 견명우선(犬命優先)’ 혹은 ‘개는 개가 아니고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혹은 ‘내가 지금도 개로 보이니?’ 혹은 ‘개 조심’.

엑스마키나
엑스마키나
마지막으로 영화 ‘엑스마키나’(21일 개봉). “체스로봇은 체스를 잘 둘지는 모르지만 과연 자신이 체스를 두는 로봇이란 사실을 인지할까?” “생각하는 로봇을 만들었다면 당신은 인류의 역사가 아닌 신의 역사를 새로 만든 것이에요” 같은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대사와 있어 보이는 제목에 현혹돼 이 영화를 인공지능 로봇의 존재적 고민과 철학을 담은 심오한 작품으로 짐작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단언컨대 이 영화는, 그냥 ‘벗는’ 영화다. 인공지능 로봇이라며 나체를 대놓고 드러내는 여배우들의 몸매를 아무 죄책감 없이(어디까지나 여자가 아닌 로봇이므로) 구석구석 감상할 수 있는 것이 이 영화의 유일한 효용이라면 효용. 알고 보면 로봇의 ‘인공지능’이 아닌 ‘몸’에 반했다가 인생 망치는 남자주인공의 이야기다.

‘마키나’의 교훈? ‘색즉시공(色卽是空)’ 혹은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하라’.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오늘의 연애#엑스마키나#존 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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