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평양과학기술대에서 6개월간 영어를 가르치며 생활한 경험을 토대로 ‘평양의 영어 선생님’이란 책을 쓴 한국계 미국인 작가 수키 김 씨는 평양 생활 초기에 학생들의 상습적인 거짓말에 적지 않게 당혹스러웠다고 털어놨다.
이달 22일 김 씨를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북한 엘리트층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얻었다. 먼저 그가 책에서 평양 학생들이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한다고 묘사했는데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학생들의 거짓말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특권층 자제들만 들어갈 수 있는 평양과기대의 학생들은 외국인 교수인 그에게 다양한 거짓말을 했다. 한 학생은 5학년 때 토끼를 복제했다고 태연하게 얘기했고 다른 학생들은 맞장구를 쳤다. 또 학생들은 북한 과학자가 A형 혈액을 B형으로 바꾸는 기술을 개발했고, 세계가 이를 부러워한다고도 말했다.
기숙사에서 통제된 생활을 하는 학생들은 부모가 보고 싶을 때 전화를 한다고 했지만 김 씨가 전화기 위치를 물으면 대답하지 못했다. 주말에는 학생들이 오전 6시부터 운동장에서 일을 하거나 운동을 했는데, 김 씨가 물어보면 늦잠을 자면서 푹 쉬었다고 대답했다. 군복을 입고 김일성학 연구실 앞에서 보초를 선 일이나 생활총화(기숙사에서 실시하는 자기비판 모임) 등에 대해서도 솔직한 대답은 듣기 어려웠다고 했다.
김 씨는 혈액형을 바꾼 북한 과학자 얘기처럼 거짓된 내용이 계속 주입되고, 외부의 정보를 접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사는 것이 거짓말을 하는 한 가지 이유라고 꼽았다. 김일성학 연구실 보초나 생활총화 등에 관한 거짓말은 북한의 체계를 외국인에게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이고, 학생들에 대한 감시도 거짓으로 둘러대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봤다. 또 거짓말을 계속하다 보니 그 생활이 버릇이 된 측면도 있고, 그러다 보니 거짓말이 나쁘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 탈북자에게도 학생들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를 물어봤다. 애국심 때문에 미국에 비해 자신들이 뒤처진다고 말하기 싫은 마음이 있고, 처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솔직하게 말할 수도 없다고 그는 설명했다. 또 자신들의 처지를 솔직하게 말하면 외국인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을 알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데, 스스로도 멋쩍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외부인에게는 지속적으로 훈련받은 방식으로 말을 하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김 씨도 마찬가지로 평양과기대 측의 규정 때문에 학생들에게 외국의 사정 등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속고 속이며 진실을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어울려 산 셈이다. 뻔한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믿은 학생들도 있겠지만 거짓인 줄 알면서도 입으로 내뱉어야 하는 학생들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거짓말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북한의 현실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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