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3일 정부가 ‘기업형 주택임대사업 육성’ 방안을 발표하기 전에 관계부처 협의 과정에서 이런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목표부터 제시하고 밀어붙이자는 것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민간의 참여가 필요해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기 어려웠지만 명확한 숫자가 있어야 한다는 재촉이 많았다”고 귀띔했다. 결국 시범지구와 공공택지를 중심으로 올해 1만 채 정도 공급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기업형 주택임대’는 임대시장이 전세에서 월세로 빠르게 바뀌는 추세를 잘 반영한 정책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그동안 전·월세 대책에서 소외됐던 중산층을 정책목표로 삼았다는 점도 과거 정책과 차별화된 부분이다. 하지만 ‘그럴듯한 목표를 제시하자’는 논의과정을 지켜보면서 과거 정부의 잘못을 되풀이할 수 있다는 걱정이 들었다.
2003년 노무현 정부는 향후 10년간 ‘국민임대주택 100만 채’를 짓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수요를 따지지 않고 짓다 보니 정작 들어올 사람이 없는 상황도 생겼다. 한 채 지을 때마다 부채가 1억 원 가까이 늘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100조 원이 넘는 부채에 시달리게 되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임대보다 분양에 초점을 두고 ‘반값 아파트’인 보금자리주택 150만 채(임대물량 80만 채)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주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해제하는 방식으로 6차에 걸쳐 지구를 선정했다. 하지만 서울 강남 물량에만 반짝 관심이 쏠리는 데 그쳤고 주택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09년 소형주택 확대를 위해 도입된 도시형생활주택도 공급을 확대하려고 각종 건축규제를 완화하다가 지난달 경기 의정부시 화재사고를 초래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박근혜 정부의 행복주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젊은층의 주거불안 해소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정작 수요가 많은 서울지역 공급 비중은 낮다. 1월 말 현재 사업 승인이 완료된 2만7493채 중 서울은 14.2%인 3898채에 그쳤다.
기업형 주택임대 정책의 방향에 동의하면서도 실효성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부는 경기 화성시 동탄2신도시와 성남시 위례신도시 등 16곳의 공공택지를 민간 건설사에 제공하겠다고 공개했지만 대부분 수요가 적은 수도권 외곽에 위치했다. 이 때문에 LH가 보유한 주택용지를 기업형 임대주택 용지로 급하게 포장해 내놓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기업형 주택임대 정책을 발표하며 과거에 늘 사용하던 ‘주거안정방안’ 대신 ‘주거혁신방안’이라는 표현을 내놨다. 혁신적인 방안이 되려면 먼저 실적에 대한 집착부터 버려야 하는 것 아닐까. 저렴한 임대료로 수익률도 확보할 수 있는, 건설사와 수요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다양한 형태의 임대주택을 제시해 주거문화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혁신방안’에 어울리는 정부의 혁신적인 대응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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