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이나 애완동물을 잃었을 때 우리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바로 눈앞에 놓인 주검을 보더라도, 살았을 때의 모습이 눈에 ‘밟혀’ 그 죽음을 믿을 수 없는 상태에 놓인다. 한마디로 기억과 실제 사이의 갭이다. 인간의 마음이란 복잡하고, 특히 치명적 상실을 받아들이는 데 고집불통이다.
이런 심리를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회화든 조각이든 하나의 장면엔 능숙하나 여러 장면이 겹치는 복합적 기억을 나타내기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개념미술이란 장르가 생겼다. 아이디어를 드러내는 게 관건인데 주로 설치미술이 제격이다.
데이미언 허스트의 상어 작품은 개념미술의 대표작 중 하나다. ‘누군가가 살아 있는 마음속, 신체적 죽음의 불가능성’(1991년·그림)이란 긴 제목의 이 작품은 실제 상어를 방부액(포름알데히드)이 가득한 유리관 속에 설치한 작업이다. 상어의 모습이 하도 생생해 이것이 박제된 죽은 상어란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당시 이 작업은 미술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허스트는 이제 50대에 들어섰지만 20대 중반에 이미 세계적인 작가로 부상했다. 소위 ‘yBa(young British artists)’로 불린 젊은 영국 작가들의 리더로 1990년대 초 세계 미술계에 ‘충격가치’라는 신조어를 제시했다. 아름다움을 가치로 여기던 미술 영역에, 충격도 가치가 될 수 있다는 새로운 발상을 보여 준 것이다.
더불어 허스트의 상어는 판매 가격 역시 충격 그 자체였다. 1991년에 5만 파운드(약 8000만 원)에 이 작품을 구매한 미술계의 큰손 찰스 사치는 2004년 800만 달러(약 88억 원)에 다시 팔았다. 당시 현대미술 최고가였다.
삶과 밀접한 주제로 관람자의 일상에 파고드는 오늘날의 미술은 밝고 이상적인 측면뿐 아니라 상실과 죽음 같은 어둡고 아픈 부분을 표현해 낸다.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지만 공감과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는 미술 작업. 바라보긴 힘들어도 중요할 수 있다. 비록 그렇게 비쌀 필요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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