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끔, 아주 가끔 물에 잠긴 그림자를 길어 올리듯이 나는 옛날 노래를 들어. 길모퉁이를 돌아설 때 가끔, 아주 가끔 이마를 짚고 뒤를 봐. 죽은 사람이 말을 걸듯이 가끔, 아주 가끔 2. 가끔, 아주 가끔 죽은 사람이 말을 걸듯이 이마를 짚고 뒤를 봐. 가끔, 아주 가끔 길모퉁이를 돌아설 때 나는 옛날 노래를 들어. 물에 잠긴 그림자를 길어 올리듯이 가끔, 아주 가끔 3. 나는 옛날 노래를 들어. 이마를 짚고 뒤를 봐.
첫 시집 ‘이상한 나라’를 내고 시단을 떠난 듯했던 시인이 27년 만에 낸 시집 ‘슬픈 암살’에서 옮겼다. 평론가 우찬제는 시집 해설에서 ‘이능표 시인이 돌아왔다’는 서두로 시인의 귀환을 반긴다. ‘서정적 열정’과 ‘예민한 스타일’의 시인이 ‘삶의 진실에 대한 그리움, 정녕 인간적인 것에 대한 그리움, 무엇보다 시적인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세월을 벼리고, 시적 연금술을 벼리며, 그렇게 20여 년 세월을 견디어 온 것이 아닐까 싶’단다.
쉰을 훌쩍 넘겼음에도 눈부신 듯 가늘게 눈을 뜨고 웃을 때의 수줍고 싱그러운 시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의 시도 여전히 싱그럽다. 섬세하면서 여리고 순하다. 독자를 들쑤시거나 어지럽히지 않고 어렴풋한 암시로 살그머니 그가 이끄는 시의 뉘앙스에 젖어들게 한다. 그것이 이능표의 감각이다.
귀맛은 입맛만큼이나 보수적이기 쉽다. 나이가 들면 요즘 유행하는 노래가 그다지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나이 든 사람을 설레게 하는 건 ‘옛날 노래’다. 그건 제가 한창 예민하고 감성적일 때 가슴을 울렸던 감각이 몸에 각인돼 있어서이기도 할 테고, 그 노래를 즐겨 들었던 시절의 젊은 자기에 대한 향수 때문이기도 할 테다. 화자는 ‘가끔, 아주 가끔’ ‘옛날 노래를’ 듣는단다. ‘물에 잠긴 그림자를 길어 올리듯’, ‘죽은 사람이 말을 걸듯’. 화자가 ‘옛날 노래’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그럼에도 얼마나 멀리 떨어져 살았는지 짐작하겠다. ‘가끔, 아주 가끔’ ‘이마를 짚고 뒤를’ 볼 때면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처럼 너울거리는 ‘옛날 노래’, 젊은 날의 시.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