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호 전문기자의 안보포커스]스포츠 스타의 ‘병역특혜’, 재고해볼 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1일 03시 00분


윤상호 전문기자
윤상호 전문기자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활동 중인 배상문의 병역기피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병무청은 최근 배상문을 병역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국외여행기간 연장 불가 통보 뒤에도 귀국시한(1월 31일)을 넘겨 해외에 머물면서 병역의무를 미루는 것은 명백한 위법이라고 병무청은 판단했다. 이에 배상문은 “법적 문제가 없다”며 병무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어쩌다 촉망받는 ‘PGA 스타’가 정부와 법적 공방까지 벌이게 됐을까.

사태의 발단은 그가 2013년 초 PGA 우승으로 따낸 미국 영주권이다. 외국 영주권을 받은 국외거주자(이민자)는 관련법상 3년 단위로 해외체류 연장이 가능하다는 게 배상문 측의 주장이다.

하지만 병무청은 주소지가 국내이고, 대학원생 신분으로 입대를 미뤘던 그가 갑자기 취득한 미국 영주권을 내세워 다른 이민 영주권자들과 똑같이 대우해 달라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반박한다. ‘영주권 취득 후 해당국에 1년 이상 계속 거주해야 한다’는 규정을 어기고, 국내에서 대회 출전과 학업을 병행한 만큼 더는 국외여행기간 연장이 불가하다는 얘기다. 사실 병무청은 배상문을 전형적인 병역기피자로 보고 있다. 이번에 연장 허가를 받으면 3년 뒤 또다시 37세까지 병역 연기를 할 수 있고, 38세가 되면 병역이 면제되기 때문이다.

스포츠 스타의 병역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현 병역법에 따르면 올림픽에서 동메달 이상, 아시아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면 병역면제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 판단과 여론에 밀려 ‘예외규정’이 남발돼 이 규정은 ‘누더기’가 되기 일쑤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대표적 사례다. 16강 진출 확정 직후 주장을 맡았던 홍명보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건의한 지 이틀 만에 국방부는 관련 규정을 고쳐 ‘초고속 병역면제’를 결정했다. 박지성을 비롯한 대표선수 10명이 혜택을 받았다. 병역의무의 형평성에 금이 갈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는 ‘4강 신화’의 환호에 파묻혔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연출됐다. 당시 정치권과 야구계의 요구에 떠밀려 정부는 또다시 관련 규정을 고쳐 4강에 진출한 한국대표팀에 병역 혜택을 줬다.

하지만 3년 뒤 같은 대회에서 4강에 오른 대표팀은 병역면제를 받지 못했다. 돈과 명예뿐만 아니라 병역 혜택까지 ‘덤’으로 챙기는 스포츠 스타들에게 비판 여론이 거셌기 때문이었다. 오락가락하는 병역정책에 국민적 질타가 쏟아졌고, 그 신뢰도 추락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선 축구대표팀 동메달이 확정된 뒤 경기 종료 4분을 남겨놓고 투입된 김기희 선수가 병역 특혜를 받아 논란이 일기도 했다.

병무청은 2013년부터 체육대회 입상자의 병역면제 기준 강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한 번만 입상하면 병역을 면제받는 것 대신 대회별로 점수를 매겨 일정 누적점수를 채워야 병역 혜택을 주는 내용이다. 비인기 종목이나 문화예술계 쪽과의 형평성도 감안한 방안이지만 한국 스포츠가 고사(枯死)될 것이라는 체육계의 거센 반발로 별 진전이 없다.

국위를 떨친 스포츠 선수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적절한 보상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 방식이 꼭 병역면제여야 하는지는 재고해볼 때가 됐다. 스포츠 선수의 병역특례제도가 도입된 1973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404달러에 불과했다. 국제무대에 태극기를 휘날리고, 대한민국을 부각시키는 활동을 최고의 애국으로 여겼던 시절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경제대국, 문화강국으로 부상한 지금까지 같은 잣대로 스포츠 스타에게 병역 특혜를 주는 것은 시대착오적 정책이 아닐까.

현실적 여건도 바뀌었다. 출산율 급감으로 군대 갈 젊은이가 크게 줄어 과거 보충역이나 군 면제를 받았던 경우까지 현역 복무를 하는 실정이다. 이런 추세라면 각종 병역특례 제도는 머지않아 폐지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선 스포츠 선수나 문화예술계 인사의 경우 전성기가 지난 30세 전후에 군에 입대해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방안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병역의무는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겠다는 모든 국민의 신성한 약속이다. 안보 상황과 현실적 여건을 고려해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원칙과 기조가 그 핵심 가치가 돼야 한다. ‘열외’와 ‘특혜’가 남발되는 병역의무는 국민 통합과 안보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윤상호 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스포츠#병역특혜#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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