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온 가족이 모처럼 저녁 밥상머리에 둘러앉았다. ‘혼자 먹는 밥은 쓸쓸하다’(송수권 시인)라고 했던가. 그날따라 함께 먹는 된장 뚝배기 맛은 기막혔다. 막내가 불쑥 묻는다. “아빠, 젓가락은 ㅅ받침인데 숟가락에는 왜 ㄷ받침을 쓰나요?”
그러고 보니 인터넷 등에 ‘숫가락’으로 잘못 쓴 글이 의외로 많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 수저이고, 젓가락 한 쌍을 세는 단위가 ‘매’임을 아는 사람들조차 헷갈려한다.
젓가락은 한자어 저(箸)에 순우리말 ‘가락’이 더해진 말이다. ‘저+ㅅ+가락’ 구조다. 소리가 ‘저까락/젇까락’으로 나기에 사이시옷을 붙인 것이다. 그렇다면 숟가락은? ‘수’에 ‘가락’이 붙어 ‘숟까락’으로 소리가 나니 젓가락처럼 ‘숫가락’으로 쓰는 게 맞을 성싶기도 하다.
열쇠는 ‘수’의 원말이 ‘수’가 아니라 ‘술’이라는 사실이다. ‘한 술 뜨라’고 할 때의 그 ‘술’ 말이다. 밥술과 밥숟가락이 동의어인 데서 알 수 있듯 술은 숟가락을 뜻한다. 숟가락은 ‘술+가락’ 구조인데 사람들이 술가락보다 숟가락으로 발음하면서 숟가락으로 굳어진 것이다.
한글맞춤법 제29항은 “끝소리가 ‘ㄹ’인 말과 딴 말이 어울릴 적에 ‘ㄹ’ 소리가 ‘ㄷ’소리로 나는 것은 ‘ㄷ’으로 적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설+달→섣달’, ‘이틀+날→이튿날’, ‘사흘+날→사흗날’, ‘삼질+날→삼짇날’, ‘풀+소→푿소’가 대표적이다.
술가락이 숟가락이 되었다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숟가락은 쇠(鐵)의 옛말인 ‘솓’이 ‘숟’으로 변한 후 손가락이란 의미의 ‘가락’과 결합했다는 것이다. 즉 ‘숟’이 먼저고 그것이 나중에 ‘술’로 바뀌었다는 주장이다(장영준, 언어 속으로).
일주일 뒤면 정월초하루, 설날이다. 지금은 음력 1월 1일을 설날이라고 한다. 양력 1월 1일은 새해 첫날의 의미만 있을 뿐이다. 지금도 신정(新正), 구정(舊正)이란 말을 쓰는 이들도 있는데 적절치 않다. 설 자체가 음력을 기준으로 하는 말이므로 ‘음력설’이란 말도 군더더기일 뿐이다. ‘설이 드는 달’이란 뜻에서 나온 섣달은 음력 12월을 가리킨다.
독자 여러분, 설 잘 쇠세요. 가족이란 숟가락, 젓가락이 몇 개인지도 아는 사이 아닌가요. 고향에서 가족의 정을 담뿍 느끼고, 듬뿍 담아 돌아오세요. 정은 아무리 퍼내도 줄어들지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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