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을 콧구멍에 밀어 넣는 건 애교에 불과합니다. 게슴츠레 뜬 눈에 우악스럽게 입을 벌리는 표정도 이젠 흔합니다. 최대한 턱을 몸쪽으로 끌어당겨 턱살이라도 접히게끔 연출해야 그나마 곁에 둘 만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하나, 둘, 셋’ 하고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가 눌릴 때까지 주인공(?)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절대 일그러진 얼굴 표정을 원상 복구해서는 안 됩니다. 카메라 앞에서 최대한 못난 모습을 연출해야 본인의 차례 때 몇 배로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간에서 번지는 ‘외모 몰아주기’ 놀이에 대한 설명입니다. ‘몰아주기’ 또는 ‘얼굴 몰아주기’로도 불리는 이 놀이는 단체 셀프카메라에서 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이 얼굴을 최대한 일그러뜨려 그 사람이 돋보이도록 하는 식입니다. 사진 속 주인공이 최대한 예쁘고 멋지게 보일 수 있도록 들러리 역할을 자처하는 겁니다. 물론 본인의 차례가 돌아오면 누구보다 빛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12일 오후 3시 현재 인스타그램에서만 ‘몰아주기’라는 해시태그(단어 앞에 ‘#’을 붙여 특정 주제를 다루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로 총 5042개의 게시물이 검색되고 있습니다. 최근 한 TV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몰아주기를 주제로 한 코너가 생겼을 정도입니다.
처음에 단순 재미로 시작했던 이 놀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생일 취업 등을 기념하는 소소한 이벤트로 한 걸음 나아갔습니다. 그저 한 명씩 ‘돌아가며 멋져 보이기 위해’ 하던 얼굴 몰아주기가 상대방을 멋지게 만들어주기 위한 놀이가 됐습니다. 다만 SNS상에서 제 살을 좀 깎아먹는 건 감수해야 할 부분이겠죠.
삐친 여자친구 달래주기, 직업실습에 지친 친구 응원하기 등 각각 다양한 몰아주기가 SNS를 뒤덮었습니다. 졸업시즌이 몰린 이번 달에는 졸업식에서 기꺼이 얼굴을 구긴 고등학생들의 단체사진이 여러 장 올라왔습니다. 전망이 좋은 바다 앞에서도, 축구 응원 중에도 몰아주기는 이어졌습니다.
어머니의 생일을 맞아 기꺼이 어머니 옆에서 인상을 찌푸리며 효녀 노릇을 자처한 한 여성의 사진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친구들은 “어머니가 점점 미인이 되어 간다”, “나도 몰아주기를 해야겠다” 등의 댓글을 달며 친구의 게시물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한 남성 아이돌 그룹은 새 드라마 촬영에 들어간 멤버를 응원하기 위해 카메라 앞에서 망가진 표정을 연출해 화제가 됐습니다. 굴욕사진에 민감한 아이돌 멤버마저도 기꺼이 카메라 앞에서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에 그룹 이름도 채 모르는 저마저도 그들의 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문득 ‘얼짱 각도’(얼굴이 가장 예쁘고 작게 비치는 카메라의 촬영 각도), ‘사기샷’(사진 속 인물의 생김새가 실물과 달라 마치 사기 같다는 의미)이라는 단어로 대변되던 과거의 SNS 사진 문화가 떠올랐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자신을 빛나 보이게끔 과도하게 연출하는 이 문화는 기대와는 달리 우울한 이슈를 여럿 만들어 냈습니다.
최근 국제적인 이슈가 됐던 한 중국 남성의 이야기도 그중 한 사례일 겁니다. 이 남성은 온라인에서 알게 된 여성의 사진만 믿고 그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로 다섯 시간 거리를 날아갔다가 사진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실망한 나머지 여성을 때려 이슈가 됐습니다. 현실과 온라인 세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던 사람들의 바람이 만들어낸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최근의 외모 몰아주기는 SNS가 점차 우리의 삶 속에 깊이 뿌리 내리면서 생겨난 자연스러운 문화가 아닐까 합니다. 비록 사진 속 모습이 제 성에는 덜 찬다 할지라도 좀 더 자연스럽게 웃고 서로를 위할 수 있는 일. 제가 SNS 세계에 기대하는 모습입니다. 오늘 여러분도 기꺼이 가족, 친구, 직장동료와 함께 얼굴 몰아주기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얼굴을 잔뜩 찡그린 만큼 미소가 돌아온다는 걸 금세 느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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