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내가 물었다. “안 좋은 일 있었구나?” 표정 관리를 했는데도 어떻게 저리 잘 알까.
사실 그는 종일 고민했다. 불도저로 소문난 신임 부서장이 불가능한 목표를 던져 주고 다그칠 게 뻔한데 다른 부서로 전출을 신청할까 생각하다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아내에게는 숨기기로 했다. “아냐. 바빠서 그래.” 결심을 하고서 말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다.
아내는 남편의 모든 고민에 동참할 자격이 스스로에게 있다고 믿는다. 남편 또한 그렇다고 인정한다. 일부에 한해서. 그는 아내가 회사 일을 마음대로 생각하고 참견하는 것이 마뜩지 않다. 조직이 첫 번째로 원하는 바가 ‘결과’라는 것부터 아내는 이해하지 못한다. 상사와 얘기 잘하고 두루 친하게 지내는 건 아내의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바빴다는 말에 아내가 반박했다. “그거 아닌 것 같은데.” 귀신이 따로 없다. 남편은 말을 갈아탔다. “피곤해. 몸살이 나려나.”
악의는 없다지만 거짓말임을 아내는 안다. 두 번의 기회를 주었는데도 남편이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만다. 그녀는 남편이 마음의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상처를 받는다.
남편으로선 ‘아내가 사정을 알게 된들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지 않느냐’라고 생각할 만하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의 고민을 끝장내 주는 해결사 노릇을 하겠다는 게 아니다.
그녀는 대화를 통해 남편을 위로하고 그의 기분이 풀리기를 바랄 뿐이다. 문제를 덮어 놓은 채 혼자 끙끙대느니 뚜껑을 열어 놓고 함께 살피며 얘기하는 게 속이라도 시원하지 않겠느냐는 그 나름의 국면 전환 방식이다.
이 또한 남편에게는 ‘의미 없는 시간 낭비’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일상의 소소한 대화를 통해 부부는 서로를 이해하며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 남편에게 거부당한 아내는 소외감을 느껴 자꾸 물러나게 되고 부부의 심리적 거리 또한 멀어진다. 그 자리를 불만이 차지하고 있다가 뭔가를 계기로 폭발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서로에게 질리게 된다.
반면 부부가 쌓아 올린 작은 소통의 벽돌들은 세월을 거쳐 빨간 망토 늑대가 용을 써도 끄떡없는 든든한 벽돌집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러니까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가 “오늘 어땠어?” 하고 묻는다면 성가시게 하려는 의도가 아닌 그녀 특유의 ‘하루 정리 방식’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밖에서 일어난 일을 한걸음 물러난 관점에서 돌이켜볼 수 있으며 생각이 차분하게 정리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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