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박태환, 금지약물 적극적 회피노력 입증해야 징계경감 가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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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하 대한스포츠의학회장

서울 강남구 일원로 삼성서울병원 사무실에서 한국 스포츠의학과 도핑 관리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박원하 대한스포츠의학회장. 박 회장은 “외부 약물 투여로 몸 안의 균형을 깨뜨리는 도핑은 페어플레이정신뿐 아니라 선수의 건강까지 해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며 “도핑 방지는 결국 선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서울 강남구 일원로 삼성서울병원 사무실에서 한국 스포츠의학과 도핑 관리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박원하 대한스포츠의학회장. 박 회장은 “외부 약물 투여로 몸 안의 균형을 깨뜨리는 도핑은 페어플레이정신뿐 아니라 선수의 건강까지 해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며 “도핑 방지는 결국 선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테스토스테론은 전립샘암 유발

나이든 남성들이 찾는 노화방지병원에서 인기 있는 이유다. 박 회장은 함부로 맞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테스토스테론을 과다 투여하면 전립샘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고 알려졌어요. 따라서 테스토스테론을 처방할 때는 전립샘암수치검사(PSA)를 같이 해야 해요. 또 혈액의 점도를 높이기 때문에 피가 굳는 혈전(피떡)이 생길 수 있어요.” 그는 과거 해외 사이클 선수들이 집단 사망한 경우가 있었는데 테스토스테론 투여로 생긴 혈전이 폐나 심장에 영향을 줬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테스토스테론은 빠른 시간 안에 근육을 키워준다. 보디빌딩 선수들이 이 약물을 사용하다 걸리는 경우가 많다. 박 회장은 대한체육회 반도핑 책임자로 있던 2000년대 초반 전국체전에서 보디빌딩 입상자 거의 전원을 실격시킨 적이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테스토스테론이 2∼4주가 지나면 몸 안에서 빠져나간다는 겁니다. 이 기간이 지나면 도핑 테스트에서 정상 수치로 나옵니다.”

바로 이 점이 완전범죄를 꿈꾸는 선수들과 도핑 감시자들 간의 접전 포인트라고 박 회장은 설명했다. 선수들은 경기를 앞두고 테스토스테론을 이용해 근육을 키워 놓고 테스토스테론이 몸에서 빠져나간 뒤에 경기에 임하는 방법을 쓴다. 테스토스테론이 빠져나가도 이미 형성된 근육으로 높은 운동효과를 낼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테스토스테론은 경기 기간뿐만 아니라 경기가 열리지 않을 때도 금지되는 ‘상시 금지약물’이다.

“호르몬수치 높이려” 의사 진술 오해여지

여기까지 설명한 그는 다시 네비도 제품 표지 설명을 가리켰다. ‘테스토스테론 운데카노에이트’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운데카노에이트’라는 구절을 주목하고 있었다.

“이는 테스토스테론에 기름을 섞었다는 걸 뜻합니다. 이때는 몸 안의 대사기간이 길어져 테스토스테론이 체내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보통 테스토스테론의 3∼5배인 10∼14주까지 늘어납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박태환 선수 또는 그 누군가가 완전범죄를 꿈꿨다고 추리해 봅시다. 이때 제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왜 이렇게 약효가 긴 약물을 맞았을까 하는 겁니다. 의도적으로 도핑을 회피할 목적이었다면 약효가 길어지는 네비도가 아니라 약효가 짧은 기존의 보통 테스토스테론을 맞으려고 했을 겁니다.”

박태환 같은 유명 선수는 언제든지 국제수영연맹(FINA)에서 기습적으로 도핑검사를 실시한다. 도핑검사관이 들이닥쳤을 때 60분 이내에 조사에 응해야 한다. 그래서 오전 5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시간대별 스케줄을 대한수영연맹에 알려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토록 약효가 긴 약물을 맞을 리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박 회장은 박태환이 의도적으로 이 약을 맞은 건 아니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박 회장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박태환에게 주사를 놓은 병원 측이 “박태환의 남성호르몬수치가 낮기 때문에 올리는 것이 좋다”는 식으로 진술한 내용을 우려하고 있었다. 검찰 수사에서는 해당 의사가 테스토스테론이 금지약물인지 모르고 이 같은 처방을 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남성 호르몬 수치가 낮은 점을 알고 테스토스테론을 투여했다는 것은 고의적인 도핑으로 오해받을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열릴 FINA 청문회에서 민감하게 다뤄질 수 있는 부분이다.

도핑검사에서 보통 소변 또는 혈액 100mL 속에 테스토스테론이 250∼1100ng(나노그램·1ng은 10억분의 1g) 포함돼 있으면 정상으로 판단한다. 평소 비교적 낮은 수치인 300ng의 테스토스테론을 포함하고 있는 A 선수가 800ng의 테스토스테론을 외부에서 투입해도 도핑검사에서는 정상치 안에 머무르게 된다. 따라서 평소 체내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은 선수가 도핑을 마음먹으면 소량을 꾸준히 투입하는 수법을 쓴다. 이를 이용한 대표적인 선수가 미국의 국민적 사이클 영웅이었던 랜스 암스트롱이었다고 한다. 그는 주사를 맞는 방식인 기존의 테스토스테론 제제로는 원하는 만큼의 소량을 투입하기 어렵다는 점을 알고 자신의 담당 의사와 짜고 소량의 테스토스테론을 혀 밑에 넣어 녹이는 방식을 개발했다.

이런 수법은 1차 도핑검사에서는 테스토스테론의 총량만을 검사하는 점을 노린 것이다. 따라서 최근의 도핑검사 방법은 선수의 평소 각종 호르몬 수치를 꾸준히 축적해 그 추이를 살펴보는 식으로 변하고 있다. 수치가 정상 범위에 있더라도 평소에 비해 뚜렷한 변화가 눈에 띄면 바로 도핑검사를 실시하고 2차 검사까지 동시에 실시하는 것이다.

완벽한 도핑은 절대 없다

박 회장은 “아무리 완벽하게 도핑을 하려고 해도 2차 검사까지 실시하면 결국엔 걸리게 돼 있다”고 말했다. 2차 검사에서는 테스토스테론의 분자 구성 비율을 살핀다. 체내에서 만들어진 테스토스테론과 체외에서 만들어진 테스토스테론은 탄소동위원소의 구성 비율이 다르다. 외부에서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도 몸 안에서 만들어진 것과 똑같이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구성 비율은 선수들에게 알려줘서는 안 되는 비밀이다. 그는 “남성 호르몬 수치가 낮으니 테스토스테론을 조금만 맞으면 도핑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큰 오산”이라고 강조했다.

“어차피 이제는 초미의 관심사가 박태환이 청문회에서 징계를 얼마나 경감받느냐가 아니겠어요? 저는 박태환이 상당히 불리하다고 봅니다.”

그는 다가오는 청문회에서 박태환이 징계를 경감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테스토스테론 투입으로 적발된 선수는 2년 자격정지를 받았다. 올해부터는 규정이 더욱 강화돼 4년 자격정지 징계를 받는다. 박태환은 지난해 적발됐기에 지난해까지의 규정대로 2년 자격정지를 받게 된다. 어쨌든 2년 자격정지를 받으면 박태환은 내년 8월에 열리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다. 박태환의 선수생명은 사실상 끝난다.

그는 “청문회에 나선 선수는 자신이 맞은 약물이 금지약물인지 아닌지 얼마나 적극적으로 알아봤는지를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박태환이 의사에게 ‘이게 금지약물이냐 아니냐’고 물어본 것이 전부인 상황이라 청문위원들이 어떻게 볼지….”

박태환이 징계를 경감받기 위해서는 본인의 노력으로는 어쩔 수 없었던 외부 요인이 발생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약물을 사용했는데, 그 치료 약물에 테스토스테론이 포함돼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박태환은 당시 병을 앓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또 테스토스테론은 치료제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동안 테스토스테론으로 적발된 선수들은 치료 목적으로 테스토스테론을 사용했음을 증명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박태환으로서는 이번 상황에서 금지약물을 피하기 위한 노력이 소극적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상황이라고 박 회장은 분석했다.

청문회에는 의료전문가와 법률가 등 3명의 위원이 참석한다. 박태환의 소명을 듣고 FINA의 어떤 규정을 적용할지 결정한다. 징계가 생각보다 강하게 나왔다고 판단되면 스포츠중재재판소에 이의를 신청할 수 있다고 박 회장은 설명했다.

고려대 의대를 졸업한 박 회장은 학창 시절 스키를 광적으로 즐기던 스포츠맨이었다. 스포츠를 좋아해 스포츠의학에 투신했다. 2006 도하 아시아경기, 2010 광저우 아시아경기, 2012 런던 올림픽 한국 대표팀 의무위원장을 지냈고 현재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의무위원을 맡고 있다. 오랫동안 국내외의 도핑관리 현장에 있었던 전문가다. 에피소드도 많다.

국내 스포츠의학 성장단계 진입

“광저우 아시아경기가 열리던 어느 날이었어요. 누군가가 ‘링게루’를 맞으려고 찾아왔습니다.”

그는 지금도 어이가 없는지 웃었다. ‘링게루’는 생리식염수를 뜻한다. 찾아온 사람은 이름만 대면 온 국민이 알 만한 스타 출신이었다. 자신이 지도하는 선수가 컨디션이 떨어졌으니 ‘링게루’라도 놔달라고 한 것이다.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링게루’는 경기력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도핑 속임수에 이용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랜스 암스트롱은 테스토스테론 투입 외에도 소위 ‘자가 수혈’을 한 뒤 생리식염수로 희석시키는 방법으로 도핑테스트를 빠져나가곤 했다. 자가 수혈은 자신의 피를 뽑아 따로 보관하다가 경기 때 적혈구만 뽑아 새로 주입하는 것이다. 적혈구에는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이 포함돼 있다. 이를 늘리면 산소운반량이 늘어나 운동능력이 향상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혈액 성분의 농도를 검사하는데, 생리식염수나 다른 액체를 혈관에 투입하면 이 농도를 희석시킨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경기 중 수액 제제를 맞을 때는 소명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이런 내용을 모르고 찾아온 그 지도자를 돌려보냈는데, 그가 염려했던 그 선수는 ‘링게루’를 맞지 않고도 금메달을 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소문이 퍼져 국내에 돌아온 뒤 여러 명이 경찰 조사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그가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았다면 모두가 큰 낭패를 볼 뻔했다.

그는 지난해 인천 아시아경기에서 한국의 도핑관리 시스템이 허술하게 운영돼 OCA로부터 많은 지적을 받은 것이 마음 아팠다고 했다. 도핑관리 시스템의 전반적인 과정을 잘 아는 전문가들을 배치해 매끄럽게 운영되도록 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했다. 이런 점은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서도 거울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이끄는 대한스포츠의학회에는 1600여 명의 의사 회원이 참여하고 있다. 선수의 체계적인 관리 및 부상 예방과 재활, 도핑 방지를 위해 힘쓰고 있다. 한국 스포츠의학은 이제 막 성장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대한스포츠의학회는 최근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주최하는 ‘2017년 세계부상질병예방콘퍼런스’ 및 ‘IOC 팀 주치의 연수코스’를 한국에 유치했다. 스포츠의학계의 올림픽이라 할 수 있는 이 행사에서는 최신 스포츠의학 이론이 논의된다. 이를 통해 한국의 스포츠의학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 체계적인 선수 육성 및 보호에 기여하고 싶은 것이 그의 희망이다.

인터뷰=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박태환#금지약물#박원하#대한스포츠의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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