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 행복한 시읽기]<375>동질(同質)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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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질(同質) ―조은(1960∼ )
이른 아침 문자 메시지가 온다
-나지금입사시험보러가잘보라고해줘너의그말이꼭필요해
모르는 사람이다
다시 봐도 모르는 사람이다

메시지를 삭제하려는 순간
지하철 안에서 전화기를 생명처럼 잡고 있는
절박한 젊은이가 보인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신도 사람도 믿지 않아
잡을 검불조차 없었다
그 긴장을 못 이겨
아무 데서나 꾸벅꾸벅 졸았다

답장을 쓴다
-시험꼭잘보세요행운을빕니다!


아름다운 에피소드다. 불특정 다수에게 유독가스 같은 ‘악플’을 살포하면서 제 아까운 삶을 하찮게 만들고 남의 정신과 감정을 시들게 하는 이들이여, 스마트폰에 이런 훈풍이 불기도 한다오. 실수를 깨달은 뒤에 젊은이는 모르는 이가 보내온 답장으로 세상을 향해 한결 따뜻한 감정을 품을 테다. 그랬으면 좋겠다. 화자는 모르는 젊은이의 그 ‘절박한’ 심정을 ‘삭제’하지 못하는 게 자신도 그런 적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겸손의 말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은 고통의 경험으로 키워지기도 하지만 타고난 심성에 더 좌우되는 것 같다. 그러기에 고통스럽게 살아서 더 냉혹해지는 사람이 있고 한없이 자비로워지는 사람이 있을 테다. 고통은 고통대로 당하고 기껏 전자의 삶이 된다면 그 운명 더 가련할레라. 아무 데도 기댈 곳 없었던 화자의 젊은 날, ‘그 긴장을 못 이겨/아무 데서나 꾸벅꾸벅 졸았다’는 세 번째 연이 가슴 시리다. 비슷한 젊은 날을 보낸 독자는 동질(同質)들을 돌아보며 외치고 싶다. ‘그것도 청춘이었다!’

‘고양이가 골목에서 마주친 나를/강렬한 눈빛으로 쳐다봤다/피하지도 도망가지도 않았다/막다른 골목에서 삶과 대면하는 듯……/계속된 한파에 움츠러든 나는/머플러 속에 얼굴을 묻으며/고양이를 외면하고 걸었다/고양이는 찬바람이 부는 골목에서/오랫동안 누군가를 기다렸던지/작심한 듯 나를 뒤쫓아왔다/내가 멈추면 따라 멈추고/걸으면 따라 걸었다/이상한 생각에 뒤돌아봤을 때/축 늘어진 젖무덤이 보였다/삶의 생살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기막힌 암흑!/나는 집으로 달려가 밥솥을 열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민감함이 뭇 생명으로 확장된 조은의 시 ‘고양이’다. 불편하다 못해 불행감에서 헤어나기 힘들 이 민감한 생의 통각(痛覺)!

황인숙 시인
#동질#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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