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한기흥]애국시인 윤동주 70주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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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자화상)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쉽게 씌어진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서시) 맑고 투명한 심안(心眼)으로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고 현실을 고민했던 슬픈 천명(天命)의 시인 윤동주. 나라를 빼앗긴 엄혹한 시대를 별이 바람에 스치듯 스물일곱 해 살다간 그의 70주기가 어제였다.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별 헤는 밤) 그리움을 이렇게 아름답게 원고지에 담은 마음도 눈길도 따뜻할 것이다. 시대와 국경을 넘는 힐링(healing)이 담겨 있다.

▷윤동주 서거 70주년을 맞아 다채로운 행사가 국내외에서 열리고 있다. 특히 그가 형무소에서 숨진 일본 후쿠오카에서는 1994년부터 시 낭독회와 추도식이 해마다 열렸다. 최근엔 시비(詩碑) 건립이 일부 혐한파의 반대 속에서도 추진되고 있다. “일본인들이 윤동주 시인을 기려야만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 이뤄진다”고 니시오카 겐지 후쿠오카현립대 명예교수는 최근 본보에 밝혔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 시를 쓰면서도 자기 성찰을 늦추지 않았던 윤동주의 영혼이 순결하다. 불행한 시대에 고뇌하고, 저항하면서 그가 남긴 시들을 우리는 너무 쉽게 읽고 돌아서선 부끄러움을 잊고 사는데…. 바람이 부는 별밤엔 하늘을 올려다봐야겠다.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참회록) 같은 그를 떠올리면서.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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