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는 참조에서 비롯된다. ‘해 아래 새로울 것 없다’는 말을 실감해야 비로소 자신만의 것을 만들 수 있다. 수직적으로 역사에서 참조하고, 수평적으론 다른 문화에서 가져오면 새로운 것을 위한 자료의 보고(寶庫)가 마련된 셈이다.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것은 신의 방식일 뿐. 명작은 다름 아닌 풍부한 자료에서 비롯된다. 그러기에 창작인은 남의 것을 많이 보고 읽어야 한다.
특히 현대의 예술은 타자의 아이디어와 작품을 보란 듯 가져온다. 물론 참조와 인용의 출처를 분명히 하는 건 기본이다. 출처를 제대로 밝혀야 나만이 갖는 ‘차이’가 극명해지고, 이 차이가 바로 창작의 꽃이 된다.
때론 전혀 엉뚱한 곳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기도 한다. 가령 가장 서구적으로 여긴 것이 자연스레 한국적 작품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서울과 영국 런던을 오가며 활동하는 작가 신미경이 그렇다. 그의 작품에서는 전형적인 그리스 여신상이 30대 한국 여인의 평범한 누드로 바뀌었고, 견고한 대리석이 쉽게 녹는 비누로 변했다.
신미경의 ‘웅크린 아프로디테 Crouching Aphrodite’(2002년·그림)는 원작 아닌 미술사 도판을 보고 포즈를 취한 작가 자신의 몸을 석고로 뜬 후 이를 다시 비누로 조각한 것이다. 비누로 만든 그의 고대 조각상은 대영박물관에 전시됐을 정도로 영국 미술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작품은 서양의 고대미술에서 가져온 형식에 동양인의 실제 몸을 재현한 것이다. 서양과 동양, 고대와 현대의 조합이다. 작가는 서구 고전의 전형에 한국을 ‘이식’시켰을 뿐 아니라 고대 조각의 권위와 영원성을 상징하는 대리석을 비누라는 일상적이고 한시적 재료로 대치했다. 이 파격적 발상은 원작의 속성뿐 아니라 문화 정체성을 고정적으로 보지 않은 데 기인한다.
원본에 대한 참조가 명확하니 차이가 돋보인다. 신미경의 작업은 특히 ‘문화 번역’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눈에 대리석 조각은 비누같이 매끈해 보였고 서구 고전의 여신상 위에 한국 여인의 몸이 겹쳐 보였다. ‘코리안 아프로디테’가 구상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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