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4개 부처의 장관(급) 개각 인사를 발표했다.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청와대 일부 개편과 소폭 개각을 통해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밝힌 지 한 달, 작년 말 ‘정윤회 문건’ 파동 뒤 인적 쇄신 요구가 빗발친 지 두 달 만에 나온 개각 치고는 새 출발의 변화도, 감동도 없는 찔끔 개편이다.
청와대는 전문성과 현안 해결 능력을 중시한 인선이라고 설명했지만 친박 성향을 더 중시한 듯하다. 해양수산부 장관에 내정된 새누리당 유기준 의원은 비박(非박근혜) 김무성 대표에게 “당직 인사권을 사유화했다”고 공격했던 강성 친박 중진(3선)이고, 국토교통부 장관 내정자인 새누리당 유일호 의원은 박 대통령 당선인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범친박이다. ‘수첩 인사’나 계파를 초월한 인재 기용으로 국정 쇄신의 각오를 보여주기 바랐던 국민의 기대를 외면한 개각이 아닐 수 없다. 여권 내부에서도 박 대통령의 폐쇄적 국정운영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불만이 커지고 최경환, 황우여 부총리에 이완구 총리까지 친박들로 내각을 채운 상황에서 친박을 더 불러들인 ‘친위 내각’이 국민통합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이번 개각으로 내각 18명 중 3분의 1인 6명이 의원직을 겸직하게 됐다. ‘청문회 공포증’에 사로잡힌 청와대가 온갖 흠결에도 불구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이완구 총리 같은 ‘현역 프리미엄’을 믿고 단행한 인사로 보인다. 의원들이 내년 총선(4월 13일)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공직선거법상 선거 90일 전(1월 14일)까지 사퇴해야 한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11개월짜리 시한부 장관들이 공무원연금 개혁, 노동 개혁 같은 난제에 직(職)을 걸고 다걸기(올인)할 수 있을지도 걱정스럽다.
박 대통령이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의 사의를 수용한다면서도 후임 인선을 설 연휴 이후로 미룬 것이야말로 납득하기 어려운 인사다. 박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1월 12일)과 이완구 총리카드 발표(1월 23일) 때 비서실장과 문고리 권력 3인방에 대한 인적 쇄신의 타이밍을 놓쳐 ‘불통 논란’을 자초했다. 이 총리가 만신창이의 ‘반쪽 총리’로 취임한 마당에 분위기를 반전시킬 새로운 비서실장 카드를 내놓지 못할 만큼 박 대통령의 수첩에 ‘사람’이 없는 것도 나라의 불행이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호흡이 잘 맞으면서도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인물을 찾기까지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비서실장 인선에 지나치게 시간을 끄는 것은 국정을 여전히 비서실 중심으로 운영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질 뿐이다. 오히려 장관 인선이야말로 이완구 총리가 제대로 검토해 임명제청권을 행사하도록 시간을 주었더라면 좀 더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모양새가 됐을 것이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어제 “의원 겸직 장관들이 총선출마 때문에 연말에 그만둔다면 걱정”이라고 ‘3분의 1 의원내각’이 된 개각을 평했다. 설 연휴가 지나면 바로 박 대통령 취임 2주년이다. 대통령의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에게 박 대통령이 응답하는 게 이렇게 어려워서야 앞으로 남은 3년간 어떻게 국정에 성과를 내고 4대 개혁을 할 수 있을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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