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증산로(상암동)와 영등포구 서부간선도로(양평동)를 잇는 월드컵대교 신설 공사는 2010년 3월 첫 삽을 떴다. 착공 5년이 지난 현재 공정은 20% 남짓으로 교각만 덩그러니 서 있다. 당초 약속했던 올해 8월 준공은 불가능하다.
공사가 더뎌진 것은 서울시가 예산을 찔끔찔끔 배정했기 때문이다.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는 공사비로 해마다 300억∼500억 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2011년 100억, 2012년 150억, 2013년 100억, 2014년 100억, 올해 150억 원만 지원했다. 총공사비는 2588억 원인데 내년부터 1825억 원을 더 투자해야 한다.
서울시는 뒤늦게 내년부터 해마다 365억 원씩 투자해 2020년 말까지 준공하기로 했다. 이래도 착공 10년 만에야 완공되는 셈이다. 예산을 적게 줘 공사를 사실상 지연시킨 서울시는 삼성물산 등 참여 기업에 공사 지연 손실도 보상해 줘야 한다.
일부에서는 월드컵대교 공사 지연이 “대규모 토목 공사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월드컵대교 공사는 토목이 아닌 안전을 위한 투자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는 옆에 서 있는 성산대교 때문이다.
월드컵대교 건설 배경에는 성산대교 통행량 증가에 따른 교통량 분산 목적이 있다. 1980년 건설된 성산대교는 교통량이 증가해 노후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한강 교량 가운데 안전등급이 C등급인 교량은 성산대교와 동호대교뿐이다. 문제는 월드컵대교 건설이 늦어지면서 성산대교에 무리한 부담이 가고 있는 것이다. 교량 노후의 주 원인은 차량 통행이다. 성산대교는 2005년 하루 통행량이 19만여 대 수준이었지만 2011년 21만 대를 넘겼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 한강에서 통행량이 가장 많은 다리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성산대교는 ‘탈’이 났다. 2018년 12월까지 1128억 원을 들여 바닥판을 전면 교체하고 구조물을 보강하는 대공사가 예정돼 있다. 물론 이것도 예산이 제때 투입됐을 때를 가정한 목표치다. 월드컵대교 준공 전 성산대교 보수 공사에 들어가면 일대 교통 혼잡은 불 보듯 뻔하다.
반면 같은 헌 다리지만 보수가 빠르게 추진되는 곳도 있다. 바로 서울역 고가도로다. 박 시장은 서울역 고가도로를 2017년까지 보행 전용 다리로 만들겠다고 지난달 밝혔다. 이 사업은 박 시장의 선거 공약 가운데 하나다. 지난달 12일 고가도로 인근 상인과 주민들의 반대로 관련 토론회가 무산됐지만, 박 시장은 17일 후 사업을 소개하는 언론 브리핑에 직접 나서며 강력한 추진 의사를 밝혔다.
물론 필자가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을 중지하고 월드컵대교에 투자해야 한다”고 무조건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장의 정책 판단이 필요한 사업도 있고, 때론 결과로 평가받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예정대로라면 2017년 탁 트인 서울역 고가도로에 올라선 사람도, 여전히 혼잡한 성산대교를 지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공교롭게도 그해 말에는 대통령선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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