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김영란 법안의 指鹿爲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4일 03시 00분


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얼마 전 별세한 역사소설가 진순신(陳舜臣)은 부모가 대만인이지만 일본에서 자라고 배워 중국과 일본을 모두 잘 안다. 그가 어느 책에선가 일본인은 욕할 때도 소심해서 일본어에는 욕이 적고 그마저도 중국인이 보기에는 욕 같지도 않은 수준이라고 쓴 적이 있다. 그중에는 ‘사슴인지 말인지조차 구별 못하는 바보’라는 뜻의 욕도 있다.

지난해 5월 김영란법 관련 정무위 심사소위 속기록을 보면 사슴인지 말인지도 구별하지 못하는 국회의원 ‘나으리’들의 대화가 나온다.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언론 부분을 얘기하시지요.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 논리적인 연장선상에서 보면 KBS, EBS뿐만 아니라 언론기관은 다 포함돼야 하는 게 아닌가.

강기정 새정치연합 의원: 그럴 것 같은데요. 길게 논의하지 맙시다.

이상직 새정치연합 의원: 그래요.

강기정 의원: 종편이고 뭐고 전부. 인터넷 신문, 종이 신문도 넣고.

박대동 새누리당 의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다 넣어야지.

이렇게 간단히 전 언론은 김영란법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김기식 의원은 “언론사는 공공성(公共性)이 크므로 당연히 김영란법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공공성이란 말을 심각히 오해하고 있다. 똑같이 공공성이라고 써도 언론의 공공성은 국가의 공공성과는 범주 자체가 다르다.

국가는 전근대사회에서 군주의 것이었으나 시민혁명 이후 공공의 것이 됐다. 국가의 지도자를 국민이 뽑고 운영비는 세금으로 충당한다는 의미에서 공공의 것이 됐다. 오늘날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공립학교는 당연히 공공의 것이다. 우리나라 사립학교는 말만 사립학교지 예산의 90%가 국가 돈으로 운영된다. 사실상 공공의 것이다. 대학병원도 그 직원은 사학연금의 큰 혜택을 받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공공의 것이다.

언론은 전혀 공공의 것이 아니다. 언론의 공공성은 공공의 관심사를 다룬다는 것뿐이지 공공의 것이란 말이 아니다. 언론은 민간에 속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공공의 것도 아니면서 공공의 관심사를 다루는, 이 모순적인 것이 언론이다. 언론은 부정한 대접을 받고 기사를 쓰면 그것이 형법으로 처벌할 수준에 못 미치더라도 시장에서 신뢰를 상실하고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 국가는 그런 부정한 대접을 받고 도로를 깔아주고 다리를 놓아줘도 생존에 위협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국가의 돈이 들어가는 곳은 김영란법으로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방송은 신문과 달리 국가의 것으로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민영화하면서 뒤늦게 언론의 모습을 갖췄다. 여전히 수신료에 의존하는 KBS와 EBS는 언론보다는, 민간에 맡겨서는 제작이 잘 안 되는 교양 프로그램으로 활로를 삼아야 하는 방송 공기업인 것이다. 그런 방송 공기업을 김영란법에 포함시킨다고 해서 민간 언론사를 줄줄이 엮어 들인 것이 사슴인지 말인지도 구별 못하는 짓이 아니고 무엇인가.

‘사슴인지 말인지도 구별 못하는 바보’란 말은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에서 나왔다. 진시황이 죽은 후 그 어린 아들 호해를 황제로 삼아 환관 조고가 실권을 쥐고 있었다. 그가 호해에게 사슴을 선물로 바치며 말이라고 하자 신하들은 두려워 진실을 말하지 못했고 호해는 사슴이라는 판단에 자신을 잃었다. 지록위마는 사슴인지 말인지도 구별 못하는 바보의 호응이 없으면 성립할 수 없다.

교수신문이 지난해의 사자성어로 ‘지록위마’를 꼽았다. 그게 뭘 두고 한 말인지 애매모호해서 교수신문답지 않았다. 김영란법의 언론사 끼워 넣기 같은 것이 지록위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지록위마#김영란 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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