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백의 발상의 전환]<7>지극히 비밀스럽고 개인적인 것의 공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4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김영진 작가
일러스트레이션 김영진 작가
살면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사이의 경계다. 실수로 내 메시지가 모두에게 공개된다면? 벗은 내 몸이 노출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악몽이다. 더구나 나만의 사적 공간은 아주 친한 이에게나 보일 뿐. 혹여 받을 내면의 상처에 늘 조심스럽다.

한번 깨지면 회복될 수 없는 게 우리 마음이다. 한없이 가냘프고 여리기 짝이 없다. 더구나 그 내용이 사람들이 꺼리는 성(性)적 내용이나 죽음에 관한 것이면 더 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 이를 연상시키는 구체적 공간을 사진으로 찍어 여기저기 붙여 놓는다면?

2012년 서울 도심 한복판, 누군가의 침대를 찍은 대형 흑백사진이 중구 세종대로 삼성생명 빌딩 등 여섯 곳에 걸렸다. 커플이 막 자고 일어난 듯 사진 속 침구가 흐트러져 있다. 행인들 대부분은 이 빌보드(옥외 광고판) 사진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작품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쿠바 태생의 미국 작가 펠릭스 곤살레스토레스의 사진작품 ‘무제(Untitled)’(1991년·그림)였다.

18년 전 38세에 에이즈로 요절한 작가는 사랑과 죽음을 지극히 체험적 관점에서 다뤘다. 일명 ‘침대 빌보드’로 통하는 그의 사진작품은 에이즈로 죽어가는 연인과의 사적 공간을 신체적 흔적과 함께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성적 성향과 상관없이 많은 이들이 이 사진에 감동한 이유는 사랑의 상실을 친근하고 실제적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신체적 죽음을 공공미술로 극복한 듯 보인다. 복제와 반복을 통해 작업의 영속성을 담보한 그가 사후에 더 인정받고 있으니 말이다.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 대표였고 2011년엔 그의 작품을 주제로 이스탄불 비엔날레가 개최될 정도였다. 곤살레스토레스의 작품은 끝없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영백 홍익대 예술학과(미술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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