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맞으며/김용희]아버지의 조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5일 03시 00분


비행기를 회항시킨 울트라 슈퍼파워 한 자녀 때문에 노구의 회장 아버지가 국민 앞에서 본인의 부덕이라며 깊이 고개 숙인다. 철부지(?) 고등학생 아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 때문에 선거에 출마한 아버지가 눈물로 사죄한다.

어떤 프로에서 패널들이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 추억한다. 어느 목사님이 신앙 때문에 애주가이셨던 아버지와 생전에 술 한잔 나누지 못했음을 못내 아쉬워한다. 우등생이던 아들이 사춘기의 방황으로 정학처분 당한 날 그 아들과 같이 여행을 떠난 아버지, 100점을 맞지 못해 멀찌감치 따라오던 아들을 포근하게 안아주던 시인 아버지…. 도박에 빠져 아버지의 사업자금까지 훔쳐 달아난 아들 때문에 쇼크를 받아 돌아가시면서 아버지가 그 아들에게 하셨다는 말씀이 모두를 울먹이게 한다. “많이 힘드냐, 괜찮다. 내가 네 빚 다 갚아줄게, 걱정하지 마라.” 우렁쉥이처럼 껍질만 남아도 억울해하지 않는 이름, 자녀에게 모두 퍼주고 추운 겨울날 휴지 줍는 노인의 등골 짝에 내리비치는 햇살 같은 이름 아버지!

자꾸만 뒤처지는 아들의 성적표를 받아보고 말없이 되돌아 앉은 아버지의 어깨가 너무 초라해 보여서 열심히 공부했다는 아들, 학부형이 된 후 공부를 시작한 사이버대 학생의 수기가 ‘부모의 자격’을 생각해보게 한다.

직장 다녀와서 피곤한 몸으로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공부하는 아버지를 보고 장학금을 받아오기 시작한 대학생 큰아들, 이런 아버지를 보고 자퇴한 고등학교에 다시 입학하여 열심히 공부하는 작은아들, 아버지의 사랑은 ‘뒷모습 사랑’이란다, 침묵하는 사랑이며 가슴 밑바닥에 묻혀 있는 사랑이란다. 정작 만나면 말 한마디 나누지 않지만 그런 아버지가 이미 성장한 아들을 울게 한다. 누구에게나 아버지는 끝도 없는 하늘이다. 그래서 부친의 사망을 천붕(天崩)이라 한다.

그러나 ‘부모 대 학부모’의 프로그램은 이런 부모들에게 갈등과 절망을 전한다. “아이 행복의 출발선인 대입 준비를 절대 포기할 수는 없어요.” 부모들이 ‘학습노동 감시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작금의 교육현장, 1년에 300명이 넘는 아이들이 학업을 이유로 자살을 선택하는 현실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재의 부모들, 예전의 아버지들처럼 가슴속에 감춰둔 사랑만으로는, 뒷모습만 보여주는 은유로는, 이제는 함량미달, 자격미달인 아버지밖에는 될 수 없는가?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제 마음속에 있는 아버지처럼 남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세상을 떠나갈 때 ‘존경했다’는 소리를 한 번만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아이들과 늘 친구처럼 지내면서 고민을 덜어주고 기쁨을 함께할 수 있는 아버지, 제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도 아이들 마음속에 든든한 아버지로 남고 싶습니다(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힘, 아버지 중에서).” 이런 정도의 각오와 마음가짐은 되어 있어야 유자격 아버지인가?

주눅 든 이 시대의 아버지들이여! 아직은 이렇게 스스로 위로하자. ‘아버지의 조건!’ 그건 그냥 아버지이면 되는 건 아닐까? 자식을 위해 가슴 아파할 수 있고, 지금도 자녀가 삶의 이유요, 목적이며, 또한 기쁨이라면….

김용희 서울사이버대 교수
#아버지#조건#사랑#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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