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나온 ‘석유의 미래’는 30년 정도 남았었다. 어른이 되면 석유로 가는 자동차는 모두 없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비슷한 시기 ‘걸어가면서 전화 통화를 하면 참 좋겠다’는 바람은 대학 시절 현실이 됐지만 석유로 가는 자동차는 앞으로도 수십 년은 너끈히 버틸 것 같다.
기술의 발전으로 어디서나 전화를 걸 수 있게 된 것처럼 석유 자동차의 장수(長壽)도 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석유를 찾아내고, 퍼 올리는 기술이 좋아진 덕에 계속 석유를 쓰고 있지만 남은 석유(더 정확하게는 매장이 확인된 석유)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관리청(EIA)이 12일 발표한 세계 석유 확인 매장량은 1조6459억 배럴이다. 석유 소비가 늘 것을 감안해도 앞으로 30년은 더 쓸 수 있는 양이다. 확인 매장량은 1980년 6000억 배럴, 1990년 1조 배럴을 돌파한 뒤에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앞으로 탐사공학과 시추공학이 더 발전될 것을 감안하면 석유는 훨씬 더 오래 쓸 수 있다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다.
그래도 석유는 언젠간 고갈될 것이고, 연소 과정에서 유해물질을 배출하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려는 열기가 뜨겁다. 영국에선 지난해 11월부터 ‘인분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사람의 배설물로 움직인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인분과 음식물 쓰레기 등에서 나오는 바이오메탄가스를 연료로 움직이는 버스다. 지난해 6월 9일은 독일에서 처음으로 국가 전체 전력 수요의 절반을 태양광발전으로 충당한 의미 있는 날이다. 휴일이긴 했지만 태양광발전량이 전체 전기 수요의 50.6%를 메웠다.
그런데 지난해 6월 이후 국제 유가가 반 토막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대체에너지 전환 노력은 저유가라는 복병을 만났다. 기름값 걱정이 줄어들자 당장 미국 운전자들이 ‘석유 고소비 모드’로 돌아섰다. 최근 6개월간 미국에서 팔린 차량의 53%는 상대적으로 기름을 많이 소비하는 픽업트럭이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다. 이는 최근 10년간 최고 수준이다. 유가가 50% 떨어지면 선진국에서는 장기적으로 석유 소비가 4.7%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또 저유가는 다른 방식으로 지구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저유가는 석탄의 채굴이나 운송 비용을 낮추면서 석탄 가격도 떨어뜨린다. 이웃 나라 중국은 발전과 난방에 들어가는 에너지 대부분을 석탄에 의존하고 있는데, 석탄 가격 인하는 중국발(發) 미세먼지에 피해를 보는 우리나라에 좋은 소식은 아니다.
저유가는 우리나라처럼 석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의 경제에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눈앞에 있는 저유가의 달콤함만 누린다면 희생해야 할 것도 적지 않다. 대기오염, 기후변화, 건강 악화 등은 저유가의 부대 비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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