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9325만 원. 얼마 전 발표된 프로야구 1군 평균 연봉이다. 외국인 선수까지 계산에 넣으면 2억 원이 훌쩍 넘어간다. 웬만한 대기업 임원 보수. 10개 구단에 이사님만 20여 명씩 있다는 얘기다. 프로 원년인 1982년 1215만 원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여기서 문제 하나. ‘국보’ 선동열이 현역 선수라면 얼마를 받을까. 20억 원? 30억 원? 포털 사이트를 뒤져보니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인 300억 원까지 부른 이가 있다. 현재 국내 최고 연봉은 한화 김태균이 2012년부터 받는 15억 원이다.
내가 생각하는 답은 ‘분명 국내 톱이지만 김태균의 연봉보다 많지는 않을 것이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선동열은 지나치게 뛰어나기 때문이다.
프로 출범 당시만 해도 선동열의 선배들은 괜찮은 대접을 받았다. 최고 연봉은 박철순과 김재박의 2400만 원. 서울 강남의 30평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거액이었다. 신인 연봉 상한선인 1200만 원은 1981년 실업 최고였던 김봉연의 480만 원보다 훨씬 많았다.
그러나 3년 반 늦게 합류한 선동열의 소득은 신처럼 군림했던 11시즌의 수입을 다 합해도 1996년 일본 주니치에서 받은 첫 연봉 1억 엔(당시 환율로 약 8억 원)보다 적었다. 프로야구단은 처음 의욕과는 달리 쌓여가는 적자에 각종 규제와 악법을 쏟아냈다. 그 최종 타깃은 당연히 선동열이었다.
선동열의 연봉은 곧 모든 선수의 상한선이 되니 해태는 겨울만 되면 전쟁을 치렀다. 0점대 평균자책을 처음 기록한 1986년 시즌이 끝난 뒤 선동열은 임의탈퇴 선수가 될 뻔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이는 병역특례를 받은 선동열을 묶어놓기에 최고의 무기였다. 해태는 한 직장에서 5년 이상 근무해야 된다는 유권해석으로 선동열의 미국행과 연봉투쟁을 동시에 저지시켰다.
결국 선동열은 웃돈을 받긴 했지만 공식 연봉은 1200만 원으로 시작해서 해마다 25%씩밖에 오르지 못했다. 야구 규약에도 없던 연봉 인상 상한선은 1990년대가 돼서야 단계적으로 사라졌고, 선동열은 1993년에야 국내 선수 첫 1억 원 연봉자가 됐다. 선수들의 연봉 대박을 불러온 자유계약선수(FA) 제도는 선동열이 은퇴한 해인 1999년 초에야 도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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