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책임제를 향한 김종필(JP) 전 총리의 열정은 아내 박영옥 씨의 빈소에서도 식지 않았다. 그제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취임 10년째인데도 여론조사에서 70% 넘는 지지를 받는다”고 하자 JP는 “그러니까 내각제를 해야 된다”고 맞장구쳤다. 앞서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를 맞아서는 “내각제가 이뤄지면 정책의 연속성도 생기고 잘만 하면 17년 동안도 정책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22일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조문을 받는 자리에선 “내가 내각제를 주장하다 망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그게 더 좋은 것”이라고 했다. “5년 대통령 단임제인데 5년에 무슨 일을 하느냐”며 MB를 ‘위로’하기도 했다. MB는 집권 3년차인 2010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필요하면 개헌도 국회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운을 띄웠으나 반향을 얻지 못했다. 최근 펴낸 회고록에서 짧았던 5년 임기를 반추했던 MB도 JP의 이야기를 들으며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을 것이다.
▷“대통령 하면 뭐 하나. 다 거품 같은 거지.” 오랜 기간 2인자로서 최고 통치자를 지켜본 노정객은 ‘대통령’이라는 제도에 비판적이었다. “사실 대통령 중심제라는 것은 따지고 보니까 무책임한 것이다. 잘하든 못하든 그 사람은 (임기가 끝나면) 나가버리는 제도”라는 것이다. “국회의원들 가만히 보면 대통령 꿈을 꾸고 있는데 어림도 없다”는 대목은 줄줄이 빈소를 찾은 여야의 차기 또는 차차기 주자들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았다.
▷DJP(김대중-김종필) 정부 2년차에 JP는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의 워커힐 회동에서 내각제 개헌 유보를 받아들였다. “내각제 개헌을 밀어붙일 경우 공동정권이 깨질 수 있어 차선책을 택했다”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권력 유지를 위한 거래를 했다는 내각제 추종자들의 반발은 거셌다. JP가 나열한 내각제의 장점은 수긍할 바가 많다. 하지만 국민이 왜 내각제를 흔쾌하게 수용하지 못하는지, 왜 지금도 개헌론이 정치인들 사이에서만 뜨거운지도 돌아본다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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