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 중소기업인, 젊은 엄마, 박 대통령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6일 00시 00분


자기이익 좇지만 고용과 납세 기여 육아의 고통과 불안, 나라엔 희망

싫고 힘든 일 마다 않는 이들을 진짜 애국자라고 부르고 싶다

자연인 박근혜가 하기 싫은 일도 대통령 박근혜는 해야 ‘창조정치’ 반대자와 舊怨 인물부터 만나야

배인준 주필
배인준 주필
우수 중소기업들을 상찬하는 ‘2015 대한민국 중소기업대상(大賞)’ 시상식이 지난달 16일 서울 한 호텔에서 있었다. 나는 한국경영혁신중소기업협회와 함께 상을 주관한 동아일보사의 임원 자격으로 27개 수상기업 대표들에게 인사말을 하게 되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은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처럼 이렇게 말할 자격이 있습니다.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라고 말입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단 10명이라도 일자리 주고 먹여 살리면 애국자다’라는 취지의 글을 썼습니다. 근년에는 5명만 월급 줘도 애국자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지금은 자기 한 입 나라에 기대지 않고 살기만 해도 애국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오늘 상을 대한민국 중소기업 대상이 아니라 ‘대한민국 진짜 애국자 대상’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업인들이 탐욕스러워 나쁘다고 합니다. 저는 기업인들의 욕심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더 많이 벌고 싶고, 힘들여 번 재산을 더 잘 물려주고 싶은 욕망이 없다면 꼭두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노심초사하고 피땀 흘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익에 욕심이 있기에 투자(投資)라는 위험을 선택했고, 남이 안 간 성공의 미로를 찾아 헤맸으며, 창의·혁신·효율에 진력했을 것입니다. 그 결과로 여러분은 기업을 키웠고 일자리를 더 만들었으며 세금을 더 냈습니다.”

나는 기업인들 못지않게, 아들딸 낳아 키우는 오늘의 젊은 엄마들을 애국자라고 부르고 싶다. 이들이 애국을 앞세워 아이를 낳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이 엄마들은 국가사회의 쇠퇴를 막고 미래에 희망을 심는 주역 중의 주역이다. 두 아들을 잘 기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내 딸을 지켜보면서, 젊은 엄마들의 육아고(育兒苦)가 중소기업인들의 경영고(經營苦) 못지않을 거라고 느낀다. 아이들이 겨우 6세, 3세가 되기까지 키우는 데도 그 엄마가 견뎌야 했던 고통과 불안은 어쩌면 100명을 먹여 살리는 중소기업인이 겪은 위기와 맞먹을지 모른다. 아빠는 외국 출장 중인데 한밤중에 한 아이 열이 40도에 이르면 두 아이를 다 끌고 응급실에 가야 하는 젊은 엄마, 한 아이를 보살피느라 잠깐 눈을 뗀 사이 딴 아이가 넘어져 앞니가 부러질 때 경악해야 하는 젊은 엄마. 저 엄마들의 가슴속은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인들 못지않게 타들어갈 것이다. 이들은 ‘그래도 이만하면 저, 아이들 잘 키우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거든예’라고 할 만하다. 그러고도 아직 육아의 끝, 갈 길은 멀다.

고생고생 끝에 어느덧 아이들을 장성시킨 선배 엄마들에게는, 이들의 노고를 피상적으로만 이해했던 한국의 한 할아버지로서 마음속으로 미안함을 느낀다. 젊은 엄마들의 뒤에서 수시로 ‘도우미’가 되어야 하고, 그러다가 체형이 비뚤어지고, 병까지 얻는 할머니들에게도 애국자라는 훈장을 달아주고 싶다.

오늘 이 땅의 위정자(爲政者)들은 중소기업인과 젊은 엄마들만큼 애국·애민(愛民)을 하고 있는가. 어제로 5년 임기 중 2년, 730일을 통과한 박근혜 대통령은 무책임하고 선동적인 인신공격까지 제동되지 않는 정치사회 풍토에서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라고 할 수 있다. 국정 성패를 따지기 전에 지난 2년간의 지도자고(指導者苦)를 위로하고 싶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 박 대통령이 ‘이만하면 내 잘했지예’라고 국민 앞에 내세우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측근들이나 무조건적 지지자들의 감언(甘言)만 듣고 자찬을 하고 싶을지 모르지만 민생현장에서는 후한 평가를 하지 않고 있음이 엄연하다. 임기가 아직 3년이나 남았다는 말도 앞세울 일이 아니다. 정치현실을 볼 때 오히려 하산길이 눈앞임을 인식해야 할 시점이다. 목표 나열이 아니라 어떤 업적이라도 구체적으로 창출하려면 분명 종전과는 다른 대통령상(像)이 요망된다. 한 가지 예로, 반대자들이나 구원(舊怨)이 있었던 인물들부터 만나 ‘제압이 아니라 경청’할 자세가 되어야 하고, 쓴소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진심을 담아 이런 변화를 보인다면 이야말로 ‘창조’를 강조하는 박 대통령의 창조정치가 될 수 있다.

진정한 애국자가 되려면 자연인 박근혜가 하기 싫은 일을 대통령 박근혜가 해야 할 것이다. 중소기업인들과 젊은 엄마들은 가장 힘든 일, 가장 싫은 일을 어제도 했고 오늘도 하고 있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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