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펜스의 한국 블로그]내 정치 무관심 깨운 한국 친구의 한마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그레고리 림펜스
그레고리 림펜스
2월 말로 한국에 이사 온 지 딱 10년이 된다. 참 행복한 10년이었다. 그동안의 수많은 좋은 만남 중 몇 개만 말해 보면 청국장, 찜질방, 영화제, 장마, 한글, 친구. 또 수많은 열광의 추억 중에는 해수욕, 함박눈, 자전거, 등산, 동료, 친구.

10년 동안 고향 뉴스에 거의 신경 안 쓰고 한국 생활에 푹 빠져서 재미있게, 열심히 살았다. 이전 생활과 달리 유럽, 북미, 중동의 시사 문제들을 (아주) 멀리서 봤다. 부끄럽게도 제일 꾸준히 확인하게 되는 유럽 뉴스거리는 스포츠다. 테니스와 축구. 일요일 밤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와 벨기에 리그의 스코어, 가끔 분데스리가. 그보다 더 창피한 건 한국 생활을 하면서도 한국 뉴스를 보는 습관도 갖지 못했다는 점이다. 고백하기 자랑스러운 게 아니지만 한국 뉴스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라 말할 수 있다. 특히 한국 정치, 예를 들면 두 정당, 정책 입안, 입법 등 말이다.

벨기에 정치는 어떻게 보면 너무나 타락하고 쩨쩨해서 계속 반복되는 일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싫증이 났다. 고향이 그다지 그립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곳에서도 한국 정치에 무관심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는 태도다. 친했던 옛 동료가 지적해 준 적이 있는 문제. 그 편집자가 회사를 그만둘 즈음 동료끼리 즐겁게 한잔했다(송별회였나? 어떤 자리였는지 기억이 정확지는 않은데 그 술자리에서 그 동료가 했던 한마디는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가 갑자기 말했다. “그레고리, 네가 정말 한국에 관심이 있다면, 현재의 한국 사회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마음이 있다면 말이지, 그럼 이 나라의 정치를 무시하지 말고 제발 신경 좀 써라.”

그 말을 듣고 죄책감이 든 만큼 좀 불편했다. 내가 곰 같은 인간이라 훈계받는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고. 그 다음 날 동료가 어제 술 좀 취했다고 불편하게 그렇게 함부로 말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진심이며 진실이란 것은 곰도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 어떻게든 이 태도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그리고 중요한 문제를 솔직하게 지적해 줄 정도로 신경 쓰는 친구는 드물고 그만큼 소중하단 사실을 나중에 깨달았다).

핑계겠지만 바쁘게 지내면서 습관을 바꾸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다. 그동안 업무적으로 매일 보게 되는 해외 문학 관련 뉴스를 제외하면 언론을 꾸준히 접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한국 뉴스, 한국 정치도 너무나 피상적으로 접근해 왔다. 요새도 집에서 쉬는 시간에, 아니면 사랑하는 2200번 버스로 출퇴근하는 길에 여전히 EPL 하이라이트를 본다. 뉴스라니. 내가.

그러던 어느 날 샤를리 에브도의 테러 소식을 들었다. 강력하고 깊은 충격이었다. 상황을 제대로 분석하기 전에도 엄청나고 결정적인 사건인 것을 이해했다. ‘Je suis Charlie(나는 샤를리다)’란 연대감을 압도적으로 느끼는 충동이었다. ‘What‘s Going On(무슨 일이죠)?’ 1971년에 가수 마빈 게이가 발표한, 반전 메시지를 담았던 음반 ‘What’s Going On’ 제목이 떠올랐다. 풍자는 고의로 어지럽히는 게 아닌가. 풍자가 유머를 통해 대상을 비판하는 만큼 의도적으로 누군가의 마음에 들지 않고 누구나의 마음에 든다면 풍자가 아니다. 샤를리 에브도 같은 언론은 일반인에게 지나친 영향을 미치는 권력자의 권위의 신성(神性)을 박탈하는 역할을 한다. 그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본질적으로 중요한 역할인 만큼 보호받을 중대한 가치가 있다. 패러디나 풍자적 그림이 아무리 분노를 일으킨다 해도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을 살해하는 것은 도저히 해명할 수 없고 정당화할 수 없다.

시리아, 우크라이나, 가자, 보코하람, 세월호. 이해하기 어려운 비극이 잦은 무서운 세상이다. 한 달 전에 일어난 샤를리 에브도 테러는 매우 가슴 아팠다. 관심 가질 중요성을 깊게 느낀 사건이다. 내가 국제 정세에, 한국 시사에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이기도 하다. 세상을 좀 덜 무관심하게, 좀 더 신경 써서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엔터테인먼트보다 언론. EPL보다 마빈 게이.

※벨기에 출신인 필자(39)는 벨기에 명문 루뱅대 법학과와 브뤼셀 KUB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다 현재 출판사 열린책들 해외문학팀 차장으로 근무 중이다.

그레고리 림펜스
#정치#무관심#샤를리#마빈 게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