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직역연금은 현행 국민연금보다 수익률이 훨씬 더 높습니다. 인구가 늘어나고 공무원 수가 늘어나고, 공무원 보수가 민간 기업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 과거에 만든 제도이기 때문에 그렇게 후하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변했습니다. 교원 임용시험이 옛날 사법고시만큼이나 어렵다고 하고, 지방공무원 9급 채용시험 경쟁률이 수백 대 1이 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공무원과 교사가 배우자 직업 선호도 최상위를 차지합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된 일입니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올해 국정개혁 핵심과제로 꼽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유시민 씨가 2007년 7월 발간한 ‘대한민국 개조론’의 한 대목이다. 운동권 시각에서 여러 권의 저서를 펴낸 그인데 이 책만은 국정운영 경험자로서 썼다. 발간 시기는 그가 온 힘을 다해 추진했던 국민연금 개혁안이 야당이던 한나라당-민주노동당의 정책연합으로 좌절되고 장관에서 물러난 직후였다. 책 제목에 ‘대한민국’이 들어가고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정부가 들고나왔던 ‘국가개조론’과 유사한 것도 흥미롭다.
장관 시절 그는 공무원연금 개혁의 필요성을 자주 언급해 공무원들의 피켓시위에 시달렸고 행정자치부로부터는 ‘월권’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유 전 장관은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을 들고나온 이유에 대해 “공무원연금 재정 상태가 국민연금보다 훨씬 심각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공무원연금을 손보지 않으면 국민연금 개혁의 추동력을 얻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공무원연금 개혁의 절박성을 간파하고 욕먹는 걸 불사하고 문제를 제기했던 이런 측면을 높이 평가한다.
당시 더 내고 덜 받는 ‘유시민표’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해 보수정당인 한나라당과 진보정당인 민노당이 연합해 반대하고 자신들이 추진한 기초노령연금법안만 통과시켰다. 유 전 장관은 “이런 사태를 주도하거나 방관한 정치인들이 대통령 경선후보로 출마해 온갖 듣기 좋은 미래전략을 말하는 장면을 보노라니 만감이 교차했다”고 토로했다.
그로부터 8년 후, 처지가 바뀐 여야가 공무원연금을 두고 똑같은 장면을 반복하고 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공무원연금 개혁을 추진하면서 ‘똥줄’이 타고 있는 반면에 새정치연합은 느긋하기만 하다. 문재인 대표는 “너무 급하게 밀어붙일 일이 아니지 않으냐”며 속도조절론을 들고나왔지만 정말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다. 새누리당이 지난해 10월 소속 의원 전원 발의로 공무원연금 개정안을 발의했고,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이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국민대타협기구 정부위원 자격으로 연금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근면안(案)’은 재직 공무원의 연금 수령액을 새누리당안보다 높이고 퇴직금은 덜 주는 방안이다. 이 처장은 ‘정부 공식안’이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상 정부안이다. 여당과 정부는 패를 내보였다.
공무원노조도 안을 내야 하지만 스스로 개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새정치연합이 연금개혁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공무원연금 개혁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강기정 의원이 “굳이 야당안이 따로 나올 이유가 없다”고 말한 것은 공무원들의 반발을 피해 가면서도 만일 연금 개혁이 실패하면 그 책임을 정부 여당에 씌우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한쪽만 카드를 내보이면 공정한 게임이라고 할 수 없다. 2007년 한나라당과 어쩜 그리 닮았는지….
공무원연금 개혁은 일분일초가 급하다. 새누리당안에 따른다 해도 법 개정이 하루 늦어질 때마다 이자가 30억 원씩 나간다. 다음 대선에서 누가 집권하든 이 업보는 집권당에 돌아온다. 유시민의 실패를 돌아보더라도 새정치연합이 집권할 생각이 있다면 좀 더 성의 있게 나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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