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민동용]피압박자 코스프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3일 03시 00분


민동용 정치부 차장
민동용 정치부 차장
적어도 한 가지 면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2·8전당대회 경선 과정은 새로웠다. 당 대표 후보로 나선 문재인 박지원 이인영 등 세 의원 누구도 박근혜 대통령을 ‘거대 악(惡)’으로 규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내 선거였지만 대통령이 공격의 주요 과녁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야당에서 특기할 만하다.

2007년 정권을 놓친 이래 야당에 정부와 여당은 무너뜨려야 할 대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2년 12월 대선에서는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을 ‘독재자의 딸’, ‘유신의 잔당’이라고 불렀다. 2013년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이나, 지난해 세월호 참사 때도 야당에서는 ‘박근혜 퇴진’ 소리가 나왔다.

임기 5년을 채우면 물러날 정권을 향해 당장 퇴진을 외친 내면에는 정권을 여전히 독재로 보는 과거의 경험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본다. 1960∼80년대 반체제 민주화 운동가들이 주축이었던 야당의 기억이 살아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독재든 권위주의 정권이든 상대를 거대 악으로 규정하고 자신은 ‘반대’라고 하면 국민은 동정하고 응원했다.

그러나 10년 동안 두 차례나 정권을 잡았던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피압박자를 자처한다면 문제다. 국민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스스로를 압박받는 처지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코스프레(복장을 뜻하는 영어 코스튬·costume과 놀이를 뜻하는 플레이·play의 합성어로 대중 스타나 만화 주인공과 똑같이 분장해서 흉내 내는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2·8전대에서 잠시 자취를 감췄던 새정치연합의 피압박자 코스프레가 다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의원의 발언과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보이콧을 통해서다. 이 의원은 지난달 25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세월호 참사를 두고 “국가가 아무런 손을 안 썼기 때문”이라며 “국가의 부작위에 의한 살인행위”라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는 “헌재가 나라를 망친다”고도 했다. 격문 혹은 독설로 피압박자의 언어를 ‘코스프레’했다.

새정치연합은 박 후보자가 1987년 신진 검사 시절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축소·은폐에 동참했다고 주장하며 인사청문회의 2월 국회 개최를 반대했다. 박 후보자 인사청문특위 소속 의원 중 486의원들의 부정적 반응이 심했다고 한다. 박종철 사건은 486의원들의 정치 인생에서 분수령과 같다. 그럼에도 당시 수사팀 말단이던 박 후보자가 사건 축소·은폐를 알았는지, 만약 알았다면 책임을 그에게 지울 수 있는지 등을 따져봐야 할 무대인 청문회 자체를 반대하는 건 지나치다. 시간을 1987년으로 되돌리려는 듯한 코스프레이기 때문이다.

피압박자 코스프레를 벗어나는 방법은 하나다. 스스로를 ‘악의 반대’로 규정하지 않는 대신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국민은 정치에서 악의 반대를 언제나 선(善)으로 보지 않는다. 문재인 대표가 경제정당 강화를 강조하고 중도통합 행보를 계속하는 까닭도 ‘코스프레는 그만하겠다’는 뜻 아니겠는가.

민동용 정치부 차장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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