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하지 마세요 세상은 슬퍼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니까 자살한 장국영을 기억하고 싶어 영화 ‘아비정전’을 돌려 보니 다들 마네킹처럼 쓸쓸해 보이네요 다들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어 해요
외롭지 않기 위해 외로워하고 아프지 않기 위해 아픈 사람들 따뜻한 밥 한 끼 먹지 못하고 전쟁으로 사스로 죽어가더니 우수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자살자들 살기엔 너무 지치고, 휴식이 그리웠을 거예요 되는 일 없으면 고래들도 자살하는데 이해해 볼게요 가끔 저도 죽고 싶으니까요 그러나 죽지는 못해요 엄마는 아파서도 죽어서도 안 되죠 이 세상에 무얼 찾으러 왔는지도 아직 모르잖아요 마음을 주려 하면 사랑이 떠나듯 삶을 다시 시작하려 하면 절벽이 달려옵니다 시를 쓰려는데 두 살배기 딸이 함께 있자며 제 다릴 붙잡고 사이렌처럼 울어댑니다
당신도 매일 내리는 비를 맞으며 헤매는군요 저도, 홀로 어둠 속에 있습니다
어린 딸을 키우며 제 힘으로 생활을 꾸려나가는 여성 시인의 삶과 꿈이 다감하게 담긴 시집 ‘해질녘에 아픈 사람’에서 옮겼다. 항상 배란기인 듯 제 몫의 삶을 뜨겁게 끌어안고 세상을 씩씩하게 헤쳐 나가는 시인의 그림자가 시편마다 어른거려서 감탄과 애틋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시집이다. 신현림의 발랄한 생명력은 그가 가슴에 태양처럼 품고 있는 시와 삶에 대한 사랑에 뿌리를 대고 있을 테다. 이 사랑의 투사(鬪士)도 ‘홀로 어둠 속에 있’을 때가 있다. 아니, 그토록 치열하게 삶을 가동시키니 밋밋하게 사는 사람들보다 자주, 혼자 있는 시간이면 나가떨어진 채 밀려오는 슬픔과 외로움과 아픔으로 캄캄해질지 모른다.
‘슬퍼하지 마세요’, 화자는 속삭인다. 둘러보면 ‘세상은 슬퍼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단다. ‘다들 마네킹처럼 쓸쓸해 보이’고, ‘다들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어’ 한단다. 우리는 왜 외로워하고 슬퍼할까. 인생은 외롭고 슬픈 것인데 외롭지 않은 삶에 대한 꿈, 슬프지 않은 삶에 대한 꿈, 그 허망한 꿈을 버리지 못해서가 아닐까. ‘꿈이 빗나가는 세상에서/꿈속 세상이 있기에 나는 살아지는데/당신은 꿈마저 버려서 살아진다 합니다’(시 ‘당신도 꿈에서 살지 않나요?’)라고 노래한, 꿈이 삶의 동력원인 시인이 ‘당신’에게 동의하는, ‘살기엔 너무 지치고, 휴식이 그리운 시간’…. 나만 힘든 게 아니라고, 당신 혼자만 힘든 게 아니라고, 세상의 수많은 외로움과 슬픔으로 제 슬픔을 묽히는 슬기를 화자는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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