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선관위가 정치관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골자는 국회의원 정수는 유지하되 비례대표를 지금보다 거의 2배 수준으로 늘리고 이들을 권역별로 선출하는 것이다. 또한 지역주의가 강한 곳에서 아쉽게 탈락한 지역구 후보자가 구제될 수 있도록 하고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을 국민경선으로 공천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보면 전혀 파격적인 것이 아니지만 우리의 정치 상황으로 볼 때는 의미 있는 제안으로 보인다.
필자는 이 개혁안이 우리의 정치 발전에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오랜 정치적 숙제였던 지역주의를 완화하고 정당민주화를 구현하는 데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보다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정치의 장을 확대하고 활성화시킨다는 점이다. 세계적으로 부유하면서도 행복도가 높은 나라들은 거의 예외 없이 정치가 선진화되어 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 좀 더 확대하면 노르딕 국가들은 그 대표적인 예다. 이들 국가는 정치의 장이 폭넓게 열려 있어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가 잘 대변되고, 경합을 하는 이해관계들이 잘 조율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 결과 사회 전반적으로 큰 갈등이나 다툼이 별로 없다. 정치가 국민의 걱정거리, 바람, 염원을 흡수해서 솔루션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 사회에는 억울하다고 길거리로 나서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높은 탑에 올라가 농성을 하고 분신을 하는 사람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정치선진국에서 온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정치의 결함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정치란 사회구성원의 바람이나 염원, 아픔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그릇이 없다. 한국 정치의 대표적인 결함은 정치의 장이 매우 폐쇄적이라는 것이다. 정치는 일종의 경기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이 스타디움에 입장할 수 있는 선수들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 당연히 ‘정치 경기장’에 참여할 수 없는 집단의 이해관계나 목소리는 무시되거나 경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들이나 소수자들이다.
이번 선관위의 개정안은 비례대표를 대폭 늘려 소수정파들의 원내 진입을 좀 더 용이하게 함으로써 폐쇄적인 정치공간을 좀 더 개방하고 확대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정치의 장이 넓어지면 정치 스펙트럼이 확대돼 좀 더 다양한 생각과 이해관계가 공론의 장에서 경합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정치는 사실상 양당제에 의해 지배되어 왔는데 이 양당제 아래서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주변 집단이나 언저리 집단은 사실상 방치되어 왔다. 선거제도는 정치의 성격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요인이고, 정치는 사람들의 삶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이번 정치관계법 개정안을 계기로 정치인들이 우리의 선거제도를 심각하게 성찰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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