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사소한 것에 목숨걸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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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검’(파란색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 vs ‘흰금’(흰색 바탕에 금색 줄무늬).

요즘 며칠 사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을 잠깐이라도 들여다봤다면 이 단어들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파검’과 ‘흰금’은 국내에 앞서 해외에서 큰 화제가 됐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지난달 26일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의 가수 케이틀린 맥닐이 의류 브랜드 ‘로만 오리지널스’의 드레스 사진을 보던 중 지인들에게 옷 색깔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런데 지인들의 대답이 ‘파란색 바탕에 검은색 레이스가 달린 옷이다’와 ‘흰색 바탕에 금색 레이스가 달린 옷이다’로 엇갈렸습니다. 맥닐은 자신의 SNS에 사진과 함께 “무슨 색으로 보이냐”는 질문을 올렸습니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곧 ‘파검’과 ‘흰금’으로 나뉘어 설전을 벌이게 됐습니다.

논쟁은 국경을 넘어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미국의 컨트리 여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와 리셴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 등 유명인들도 갑론을박을 벌였습니다. 미국의 한 온라인 매체는 22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의사, 심리학자, 그래픽 소프트웨어인 ‘포토샵’ 개발자 등 전문가들까지 나섰습니다. 이들은 조명의 차이, 빛의 양,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인지 방식 차이 등으로 색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사태는 로만 오리지널스가 “매장에서 판매되는 드레스의 실제 색상은 파란색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라고 밝히면서 진정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색상과 상관없이 논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인터넷에는 최근 이와 관련된 패러디물이 등장했습니다. 한 누리꾼이 초록색의 ‘우루사’ 사진을 SNS에 올리며 “사실 이거 흰금입니다”라고 하는가 하면 한 대학의 동아리 회원들은 신입생을 모집하는 대자보에 검은색 잉크로 ‘이 글씨 사실 파란색이다’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런 ‘사소한 것에 대한 논쟁’은 온라인에서 꾸준히 화제가 돼 왔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면 누가 이기나’에 대한 논쟁입니다. 이 질문은 2002년 12월 국내 한 포털사이트의 지식 관련 코너에 게시된 후 지금까지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먼저 친 놈이 이긴다”는 식의 단순한 글도 있지만, “사자는 무리 생활을 해 일대일로 싸움을 하지 않는다”거나 “지형이 험준한 곳에서는 다리 근육이 강한 호랑이가 이기고 넓은 평야에서는 사자가 이긴다” 등 진지한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탕수육을 어떻게 먹을 것인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진행된 적도 있습니다. 한쪽은 “처음부터 소스를 튀김에 부어 먹어야 중화요리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튀김의 바삭한 맛을 없앨 작정이냐, 튀김은 소스에 찍어 먹어야 한다”며 지금까지도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라면을 끓일 때 수프부터 넣을 것인가, 면부터 넣을 것인가’, ‘상추쌈을 맛있게 먹으려면 쌈에 고기부터 얹어야 하나, 쌈장을 바른 후 고기를 얹어야 하나’ 등 논쟁 주제는 지금까지 수없이 나타나 왔습니다.

물론 “쓸데없이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하지만 이런 논쟁이 마냥 쓸모없는 것은 아닐 듯합니다. 일단 누리꾼들에게는 자신의 감정이나 취향을 증명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놀이인 셈입니다. 또 “완벽함은 사소한 부분에서 나온다”는 미켈란젤로의 말처럼 사소한 논쟁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을 테니까요. ‘사소한 발견’은 때로 우리 삶에 꽤 많은 재미와 활력을 줍니다.

김범석 소비자경제부 기자 bsism@donga.com
#파검#흰금#로만 오리지널스#논쟁#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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