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소득주도 성장’ 내걸고 기업에 부담 떠넘길 셈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1일 00시 00분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일주일 전 “적정 수준의 임금 인상 없이는 내수가 살아날 수 없다”고 말한 뒤 이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민간 싱크탱크인 한국경제연구원은 어제 “정부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 소득중심 성장정책을 추진하지만 무리한 소득증대는 내수진작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최 부총리의 발언이 나온 바로 다음 날 전국경영자총협회도 올해 임금 인상률을 1.6% 범위 안에서 조정할 것을 회원사에 권고했다. 반면 여야 정치권과 노동단체들은 큰 폭의 임금 인상을 주장하고 나서 노사정 갈등으로 번질 조짐도 보인다.

미국과 일본 정부도 임금 인상을 독려하는 추세인 것은 맞다. 그러나 미국은 과감한 혁신을 통해 ‘나 홀로 호황’을 구가하고 일본은 엔화 약세와 통화량 확대 같은 ‘아베노믹스’에 힘입어 수출기업 실적이 호전돼 여력이 있다. 미국이나 일본과 현저히 다른 우리 경제와 기업의 현실에서 정부가 기업에 임금 인상 압박을 하는 것이 옳은지 의문이다.

삼성전자조차 실적이 크게 나빠져 6년 만에 올해 임금을 동결하기로 노사 간에 합의할 정도다. 통상임금 확대, 정년 연장, 근로시간 단축으로 기업들은 가만히 있어도 인건비 부담이 커졌다. 한계선상에 내몰린 상당수 중소기업은 임금을 올릴 여력도 없다. 정부가 임금 인상을 독려해서라도 내수 침체를 타개하려는 고민은 이해한다 해도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정책으로 기업 부담을 더 키우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

한국은 강성 노동운동이 득세하면서 실질임금 상승률이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웃돈 지가 오래다. 기업들이 신규채용을 주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동생산성은 높아지지 않는데 임금 인상 압력만 커지면 기업에 ‘고용 장벽’이 닥칠 수 있다. 그러니 재계에서 “얼마 전까지 일자리 창출이 최우선이라던 정부가 갑자기 임금 인상을 독려하면 어느 장단에 춤추란 말이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앞뒤를 안 가리는 ‘임금 인상론’은 자칫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확대시키고 노사 협상에서 강성 노조에 힘을 실어줄 우려가 있다. 고도성장기에는 임금 인상과 고용 창출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지만 저성장기에 접어든 지금은 거의 불가능해진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소득주도 성장’의 대상을 비정규직으로 좁힌다면 내수 살리기와 노동유연성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을 쥐어짤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 경직성을 푸는 구조개혁, 투자의 물꼬를 터주는 규제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최경환#임금 인상#내수#노사정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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