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듀오 노라조의 신곡 ‘니팔자야’가 화제다. 불과 2주 만에 이 뮤직비디오의 유튜브 조회수는 200만 건을 돌파했다. 열혈 팬들의 도움으로 영어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독일어 태국어 자막을 넣은 외국어 버전과 10시간짜리 반복 영상까지 등장했다.
사이비 교주와 박수무당을 연상케 하는 노라조 모습에 컴퓨터그래픽을 정신없게 입힌 이 뮤직비디오는 ‘의도된 싼티, 촌티, 날티’를 특징으로 하는 ‘B급 문화’ 요소를 다 갖췄다. 한때 유행어를 빌려 말하자면, “참∼ 웃긴데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네.”
그런데 이 ‘엽기발랄’한 뮤직비디오를 지상파 방송에선 볼 수 없다. 방송 심의 때문이다. 한 케이블 방송사에 심의를 넣었다가 통과가 안 되자 더 까다로운 지상파 방송사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유튜브에 공개했다. 뮤직비디오 도입부에 내레이션과 함께 나오는 최면 부분이 심의에서 문제가 됐다. “나는 이 노래가 너무 좋다. 나는 이 노래를 주변 사람들에게 자꾸자꾸 들려주고 싶고 유료구매하고 싶어진다….”
해당 방송사는 ‘본 영상은 과학적 근거가 없습니다’ 식의 안내문을 요구했다고 한다. 웃긴 노래 가사보다 방송사가 요구한 자막 문구가 더 웃긴다고 생각하는 건 나만이 아닐 거 같다.
너무 근엄해서인지, 유머감각이 부족해서인지 몰라도 그동안 우리 사회는 주류에서 벗어난 B급 문화에 인색했다. B급 문화는 창의성의 원천이자 주류 문화에 다양성을 제공하고 자극을 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국내 메이저 기획사들이 야심 차게 투자한 ‘A급’ 문화 콘텐츠로도 통하지 않던 미국 시장을 단숨에 사로잡은 건 “나는 태생부터 B급”이라던 싸이였다.
최근 B급 코드는 세련된 ‘A급’을 밀어내고 가요 방송 영화 광고 등 각 분야에서 인기를 끌며 저변을 넓혀 가는 추세다. 어색한 ‘발연기’ 덕분에 CF를 9개나 찍었다는 ‘발연기 스타’도 탄생했고, 초등학생 낙서같은 그림체를 선보인 ‘이말년시리즈’ 등 웹툰은 ‘병맛 콘텐츠’라는 인터넷 신조어와 장르까지 만들어내며 각광받고 있다.
이러한 B급 문화의 부상을 한국 대중문화의 발전과 연관지은 분석도 나온다. B급 문화 출현의 조건이 열광적인 팬과 추종자들의 존재, 그리고 이들에 의한 제2의 창작 행위인 만큼 대중문화가 어느 수준까지 발전하지 않으면 B급 문화는 나타날 수 없다는 거다. B급을 ‘쿨’하게 여기고 따라하는 소비층은 기업들의 마케팅 대상으로도 떠올랐다(‘B급 문화, 대한민국을 습격하다’·북오션).
개인적으로는 B급 문화가 ‘다름’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이런 현상이 더 반갑다. 교육 현장을 비롯해 우리 사회 많은 곳에선 아직도 ‘다르다’는 ‘틀리다’와 동의어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으니까.
지난달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비주류에게 따뜻한 시선을 담은 수상 소감이 감동을 줬다. 각색상을 수상한 그레이엄 무어는 16세 때 자살을 기도했던 일을 고백하며 “내가 이상하고 남들과 달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곤 이 사회 어딘가에서 그 시절의 자신처럼 생각하고 있을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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