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유학생들이 일본에 맞서 러시아의 정보요원으로 활약한 사실이 최덕규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에 의해 최근 밝혀졌다. 동아일보가 지난달 28일 이를 1면으로 단독 보도하자, 일각에서는 고종과 대한제국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해석이 가능해졌다며 크게 반겼다. 일본의 침략에 대한제국이 그저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했다는 기존 시각을 되짚어 볼 계기가 됐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러시아나 중국에서 치열한 항일투쟁을 벌인 독립투사들의 면면을 속속들이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일례로 최 연구위원이 러시아 국립역사문서보관소를 드나들며 기밀자료를 끈질기게 파고든 끝에 정보요원으로 활약한 오운석과 구덕선, 현홍근 등 러시아 유학생 9명의 이름과 파견지를 알아냈지만 구체적인 행적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이들이 한반도와 만주, 러시아 접경지대에서 비밀리에 활동하며 러일전쟁 무렵 일본군의 동향을 파악한 정도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러시아에 비해 더욱 치열하게 전개된 중국 내 항일투쟁도 적지 않은 부분이 안갯속에 있다. 이 중 한시준 단국대 교수가 푸단대와 함께 진행하는 ‘한중 공동 항일투쟁사’ 연구는 최 연구위원의 성과 못지않게 드라마틱한 부분이 많다. 특히 한인 청년들이 중국 비행학교에서 조종사 교육을 받고 중국 공군으로 참전해 일본과 싸운 기록이 그렇다.
예컨대 대한민국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최용덕 장군은 중국 보정항공학교를 나와 중일전쟁 당시 난창(南昌) 공군기지 사령관으로 복무했다. 또 최초의 여성 비행사인 권기옥은 윈난(雲南)항공학교를 졸업하고 중국군에서 전투기를 몰았다. 이 밖에 장성철과 이영무, 김은제, 김원영 등이 창공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몇몇 유명 인사를 제외하고 상당수 한인 조종사의 구체적인 신원과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학계에서는 러시아어나 중국어로 적힌 1차 사료에 접근하기 쉽지 않은 데다 그동안 중국, 러시아와의 공동 항쟁사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고 말한다. 6·25전쟁과 냉전을 거치면서 구(舊) 사회주의권과 협업의 역사를 깊이 있게 파고들기는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중국이 우리나라의 최대 무역국으로 부상하는 등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이 부분에 대한 연구는 역사왜곡을 일삼는 일본에 대항해 한국과 중국, 러시아가 연대할 수 있는 역사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중국 시진핑 주석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항일전쟁과 광복 70주년을 공동으로 기념하자고 제의한 데 이어 러시아 정부가 5월 전승 70주년 기념행사에 박 대통령을 초청해 눈길을 끈다. 이는 역사적 경험이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여전히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한반도를 넘어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에서 일제와 싸운 독립투사들의 삶을 조명하는 것은 광복 70주년을 맞은 후손들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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