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황인찬]서울시장 공관과 낙산경로당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7일 03시 00분


황인찬 사회부 기자
황인찬 사회부 기자
서울 종로구 낙산 한 자락에는 낙산경로당이 있다. 5선 의원에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소강(小崗) 민관식 박사(2006년 별세)가 1972년 지역주민과 함께 지은 경로당이다. 방 한 칸에 부엌이 딸린 협소한 시설은 40년이 넘는 세월의 더께까지 얹혀져 낡고 볼품없게 변했다. 하지만 여전히 지역 어르신 15명가량이 매일 찾는 동네 사랑방이다.

이 경로당의 철거가 최근 추진되고 있다. 서울시는 2017년 6월을 목표로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데 경로당이 성곽 인근에 설치돼 있어 “경관을 해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경로당 이전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직접 지시했다. 박 시장은 1월 23일 낙산의 한양도성을 살펴보는 현장에서 “(경로당을) 경관을 해치지 않게끔 (종로구와) 잘 협의해서 이전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고 서울시 측은 밝혔다.

서울시와 종로구의 관련 부서는 바빠졌다. 이미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한양도성을 실사하기 위해 유네스코 관계자들이 이르면 내년 6월 서울을 찾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전까지 경로당은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경로당의 설립과 관리는 구청의 업무다. 서울시는 종로구에 우선 급한 대로 인근 건물을 임차해 경로당을 옮긴 뒤, 내년 주민참여예산 등을 확보해 새로운 건물을 세우거나 기존 건물을 매입하는 안을 제시했다. 이렇게 되면 경로당 어르신들은 수십 년간 정들었던 공간을 내주는 것도 모자라 두 번 이사를 해야 한다.

종로구는 난색을 표했다. 당장 대체건물 임차에 필요한 예산(약 3억 원)을 마련하는 것도 문제지만 경로당 인근을 찾아봐도 적당한 건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종로구는 서울시에 “경로당을 현 위치에 존치하는 방법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고 아직 답을 받지 못했다. 종로구 관계자는 “서울시 요청대로라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이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아직 낙산경로당 어르신들께는 이전과 관련해 말도 못 꺼낸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필자는 문득 서울시장 공관이 생각났다. 1940년에 지어진 혜화동 시장공관은 한양도성 성곽을 축대로 사용해 문화재 훼손 지적을 받아왔다. 결국 성곽 복원을 위해 박 시장은 2013년 12월 혜화동 공관을 떠났다. 박 시장은 은평뉴타운 복층아파트를 거쳐 지난달 종로구 가회동의 새 공관으로 이사했다.

시장공관과 낙산경로당은 한양도성 복원과 관련해 이전 대상이 됐다는 점에서 이렇게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시장은 새 공관을 마련해 이주한 반면 경로당 어르신들은 아직 갈 곳을 찾지 못한 점에서 차이가 있다.

서울시는 내년 유네스코 실사단이 오기 전까지 한양도성 인근의 경관을 해치는 시설들을 대대적으로 정비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제2의 낙산경로당’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사단은 한 번 왔다 돌아가지만 지역주민은 세계문화유산 등재 결정 전에도, 그 후에도 그곳이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황인찬 사회부 기자 hic@donga.com
#낙산경로당#서울시장 공관#한양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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