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전문기자의 기업가 열전]<1> 이범택 크린토피아 회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8일 03시 00분


“빨래로부터 주부 해방” 세탁 산업화 선도

이범택 크린토피아 회장이 세탁공장을 찾아 다림질 공정을 마친 와이셔츠를 살펴보고 있다.
이범택 크린토피아 회장이 세탁공장을 찾아 다림질 공정을 마친 와이셔츠를 살펴보고 있다.
김상철 전문기자
김상철 전문기자
세탁을 통해 깨끗한 세상, 풍요로운 생활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세탁사업에 나선 지 23년. 크린토피아를 설립한 이범택 회장(63)은 세탁을 산업화해 주부가 힘들어하는 세탁과 다림질에서 해방되도록 세탁문화를 바꾼 주인공이다. 세탁 프랜차이즈 1위 업체인 크린토피아는 전국 135개 세탁공장에서 2285개 가맹점이 접수한 세탁물 30만 점을 매일 처리한다. 본사와 가맹점 종사자가 6000명에 이른다.

○ “직장생활 미래없다” 3년만에 대기업 퇴사

이 회장은 한양대 섬유공학과를 마치고 럭키(현 LG화학)에 다니다 회사 생활이 자신의 꿈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입사 3년 만에 사표를 냈다. 아내와 부모가 말렸으나 사업을 하고 싶다고 끈질기게 설득해 무언의 동의를 얻었다.

“10년 후 내 모습을 떠올려 봤어요. 잘하면 부장, 아니면 본부장? 상사를 보면서 내 길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대학 선배로부터 의류 수출이 괜찮다는 얘기를 듣고 사업에 나섰다. 선배가 도와줘 큰 납품 주문을 받았지만 품질과 납기를 못 맞춰 투자비를 몽땅 날렸다. 옷 한 벌 만드는 데 원단이 얼마나 드는지, 통관은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 초짜였다.

“사업 실패로 음식물을 못 삼킬 만큼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지요.”

절치부심하던 이 회장은 섬유와 염료의 특성을 제대로 알고 가공하는 염색업체가 없다는 얘기를 지인에게 듣고 기회라고 생각했다. 부모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한때 포목점을 했던 아버지는 자녀(2남 2녀)의 학비를 대느라 몇 마지기 남지 않은 농지를 담보로 자금을 대줬다. 1986년 경기 김포에서 축사를 개량한 공장 50평을 월세로 빌려 중고 기계 3대를 설치했다.

벼랑 끝에 선 이 회장은 기술 개발에 승부수를 걸었다. 줄어들지 않는 울 제품 염색법을 선보이자 기술이 좋다는 소문이 퍼졌다. 대기업에 있던 선배가 탈색한 수출용 청바지 쪼가리를 주면서 만들 수 있느냐고 물었다. 코피를 쏟고 밤을 새우며 한 달간 매달린 끝에 스톤 워싱으로 얼룩덜룩한 ‘스노우 진’을 개발했다.

청바지 업체들이 제품을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양산하려면 외국산 뜨는 돌이 많이 필요했으나 살 돈이 없었다. 리바이스로 유명한 한주통상이 선뜻 2억 원을 내놔 기계 3대를 추가하고 공장을 경기 성남으로 옮겼다. 풀가동해도 모자랄 정도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 500원에 ‘세탁+다림질’ 서비스로 도약


이 회장은 의류 트렌드를 보려고 이탈리아에 갔다가 청바지가 사양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른 사업 아이템을 찾다 일본에서 본 세탁편의점에 꽂혔다. 1992년 세탁사업부를 발족하고 공장 한쪽에 세탁기계를 설치했다. 세탁물을 접수하는 가게를 열고 프랜차이즈 사업에도 나섰다.

세탁물의 종류, 소재, 형태가 다 달라 힘이 들고 예상보다 적자 규모가 커지자 세탁사업을 접을까 고민했다. 이 소식을 듣고 한국전력에 다니던 동생(이범돈 크린토피아 사장)이 집에 찾아와 자신에게 맡겨 달라고 졸랐다. 그러면 내가 손을 못 뗀다며 만류하다가 사업 전망을 믿고 동생을 받아들였다. 이때 이 회장이 세탁사업의 미래를 제대로 내다보지 못했다면 오늘날의 크린토피아는 없었을 것이다.

○ 글로벌 세탁 전문기업을 향해


세탁업은 설비와 물류를 갖추는 데 자금이 많이 드는 장치사업이라 초기 5년간 적자를 내며 고전했다. 오랜 연구와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세탁과 건조, 다림질은 물론이고 세탁물을 가맹점별로 분류하는 자동화 시스템을 완성해 생산성을 크게 높였다. 외환위기 시절 500원에 와이셔츠를 세탁해 다림질까지 해주는 서비스로 시장 공략에 나섰다.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성장 가도를 달렸다.

이 회장은 업계에서 처음으로 항균세탁, 하루 3회 배송, 의류 보관 서비스를 도입하는 등 고객에게 더 좋은 세탁 품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1, 2인 가구가 증가하고 캐주얼 의류 확산으로 물세탁 수요가 늘어나자 세탁편의점과 코인빨래방을 합친 세탁멀티숍 ‘크린토피아+코인워시’를 선보였다.

이 회장은 중국에 상표 등록을 하고 제휴를 추진하는 등 해외 진출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글로벌 세탁 전문 기업, 그의 꿈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김상철 전문기자 sckim007@donga.com
#이범택#크린토피아#세탁#산업화#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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