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학자, 퇴직 언론인, 전직 대법관 출신 법조인이 함께한 모임에서 ‘김영란법’에 언론인을 포함시킨 것이 화제가 됐다. “언론인들을 싸잡아 부패집단으로 간주했는데도 언론인들은 분노가 없는 것 같다.”
언론학자가 이렇게 운을 떼자 퇴직 언론인은 “술 얻어먹고 밥 얻어먹는 관행에 오래 젖다 보니 양심에 찔려서 그런 것 아닐까”라고 했다. 좌중에 쓴웃음이 번졌다. 다시 목소리를 높인 사람은 법조인이었다.
“이렇게 중요한 법이 언론인들로부터 변변한 의견 수렴 절차도 없이 국회를 통과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법에 언론인을 포함시키는 게 법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법적인 요건 면에서 봐도 언론사의 규모는 물론이고 적용 대상이 되는 언론인이 기자만 말하는 건지 직원들까지 포함되는 건지 규정 자체가 아예 없다. 어떤 문제가 있어서 언론인을 포함시킨 것인지 등에 대한 설명도 없다. 한마디로 부실 국회가 만든 부실 법안이다.”
실제로 ‘김영란법’이 기준으로 삼은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은 언론보도에 따른 피해를 다루는 법이어서 언론사에 대한 규정만 있지 언론인에 대한 규정은 없다. 이 법에서 말하는 ‘언론이라 함은 방송 정기간행물 뉴스 통신 인터넷신문’이고 ‘언론보도는 방송이나 정기간행물 등의 사실적 주장에 관한 보도’이다. 즉, ‘김영란법’은 언론인에게 적용된다기보다 언론사에서 일하는 전 임직원들에게 적용된다. 기자뿐 아니라 경영 엔지니어 마케팅은 물론이고 경비직까지 다양한 직군이 언론인에 포함되어 법의 통제대상이 될 수 있다.
언론인에 대한 정의를 놓고 미국에서도 오랫동안 논란이 지속되어 왔다. 이유는 우리와 정반대다. 미국은 일찍이 언론인들에게 취재원 보호를 법적으로 보장해 주기 위해 각 주마다 ‘방패 법(Shield Law)’을 만들어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정부를 비판 감시하는 언론인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법적, 제도적으로 어떻게 그 역할을 보장해 줄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냈다. 주마다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미국 법에서 보호하고 있는 언론인에 대한 정의는 크게 다음과 같다.
‘미디어 형태를 불문하고 대중에게 정보를 전달할 의도를 가진 사람 중에서 ①일정한 빈도로 정기적으로 뉴스를 공급하는 사람 ②적정 규모의 독자와 시청자가 있는 언론기관에서 취재, 보도, 편집 등의 일에 종사하는 사람 ③전문기관 등이 인정하는 신문, 방송, 통신 등을 위해 취재와 보도에 직접 종사하는 사람 ④생계를 언론기관에 의존하는 사람’이다.
언론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재가 아닌 엄연한 사유재이다. 사유재는 시장이 알아서 조절하고 퇴출시킨다. 기업이나 취재원을 겁박하여 돈을 뜯어내는 이른바 사이비 기자들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전통 주류 언론들은 일제강점기는 물론이고 암울한 독재정권하에서도 해직을 불사하고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 온 역사를 갖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지성인들로서 스스로의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양식, 윤리의식과 자정능력을 갖고 있다.
이를 잘 알고 있을 여야 정치권이 언론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의조차 제대로 내리지 않고 기습적으로 부정부패 방지법에 ‘언론인’을 포함시킨 이유는 뭘까? 한마디로 정치권의 입장에서 불편하고 껄끄러운 언론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의도가 아니겠는가. 국민 위에 군림하며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어온 정치권이 언론마저 자기들 밑에 두려는 오만한 행위라 할 수 있다. 김영란법은 한마디로 여야가 합작한 신종 언론탄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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