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해지고 애들이랑 구루마* 끌고 온 그이 마중 문 앞에서 그이가 웃는다 그을린 얼굴엔 찌든 땀이 가득
돈 많이 벌었어 십만 원 가까이 벌었다 그래서 맛있는 거 먹고 기저귀도 사고.
* 내 남편 한받은 ‘구루부 구루마’를 끌고 홍대 앞을 다니며 음반과 책을 판다
화자는 젊은 여자지만 어린애가 딸렸으니 일거리를 찾기 힘들 테다. 젊은 남자일 화자 남편도 일자리가 불안정하다. ‘난 몰라/난 몰라’, 화자는 속수무책으로 애를 태운다. 아기 기저귀도 떨어져가고 어쩌면 쌀도 간당간당하고. 지난 세기의 60년대나 70년대 얘기가 아니다. ‘삼포세대’ 남녀가 부잣집 자식도 아니면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지 않아 처한 작금의 현실이다. ‘생기겠지/생기겠지?’, 문 앞에서 작은애를 업고 큰애의 손을 잡고 일 나간 남편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늦저녁. 다행히 ‘그이가 웃는’단다! 힘없고 쓸쓸한 웃음이 아니라 활짝 갠 웃음일 테다. 빤한 살림을 모를 리 없는 남자도 온종일 속이 탔겠지. ‘돈 많이 벌었어/십 만원 가까이 벌었다’! 의기양양한 남편의 보고에 아내 얼굴이 환해졌겠지. 애들도 영문 모르며 까르륵거렸겠지. ‘그을린 얼굴엔 찌든 땀이 가득’, 고맙고 안쓰러운 내 남편, 애들 아빠! ‘그래서 맛있는 거 먹고/기저귀도 사고’, 당분간의 다행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소박한 기쁨을 만끽하는 화자다.
내가 알기로 김연희는 일반적인 등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시인이다. 삶을 섬세한 촉수로 더듬는 자세를 잃지 않고 살려는 이가, 그 일상을 일기 쓰듯 시로 써서 그게 모이면 혼자 작은 시집으로 내는, 말하자면 ‘재야’ 시인이다. 이 시는 2년 만에 낸 그의 두 번째 시집 ‘작은 시집’에서 옮겼다. 쉽고 군더더기 없는 시어로 다듬은 시들에서 편편이 전해지는 시인의 여리고 따뜻하면서도 견결한 심성이 독자를 기어이 정들고 편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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