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차승원’이란 이름을 치면 ‘제육볶음 레시피’, ‘요리 잘하는 이유’, ‘아들 딸’, ‘아내’, ‘겉절이’, ‘짬뽕’, ‘볶음밥’, ‘추성훈’ 같은 단어들이 함께 뜬다. 이들 중 남성성을 가진 단어는 ‘추성훈’ 하나뿐이다.
대중이 마초의 상징으로 생각했던 배우 차승원은 요즘 ‘차줌마’(차승원+아줌마)란 별칭으로 또 다른 전성기를 맞았다. ‘삼시세끼-어촌편’이란 케이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신기에 가까운 요리솜씨와 더불어 그가 보여준 일종의 모성(母性)은 차승원을 ‘상남자’로만 여겨온 대중에겐 충격에 가까운 진실로 다가왔다. ‘약간 껄렁해 보인다’며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동네 아줌마들도 “알고 보니 차승원이 진짜 엄마요 주부”라며 그에게 동질감까지 느끼는 상황이 되었다. 아줌마들은 그가 TV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결코 과장되거나 연출된 것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잔뼈가 굵은 진정한 아줌마들만이 보여주는 심오한 세계를 차승원은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①볶음요리에는 채를 썰고 찌개요리에는 깍둑썰기를 한다. ②강력분, 중력분, 박력분 등으로 밀가루를 구분한 뒤 빵 반죽을 만든다. ③요리를 한다며 부엌에 온통 일을 벌여놓은 뒤 나중에 일거에 설거지를 하는 초심자와 달리, 치울 건 치워가면서 요리를 동시에 수행하는 멀티태스킹이 습관화되어 있다. ④밑간에 강하며 재료의 숙성을 중시한다. ⑤요리할 땐 레깅스 같은 몸에 민망할 정도로 착 달라붙는 옷을 즐겨 입는데, 이런 종류는 ‘몸뻬’와 더불어 아줌마들이 김장을 할 때 ‘움직이기 편하다’며 가장 선호하는 패션이다. ⑥넓고 둥그런 접시보다는 크고 기다란 네모접시를 선호한다. ⑦자기가 요리한 음식을 남이 먹는 모습을 보면서 제 입에 요리가 들어가는 것처럼 만족감 철철 넘치는 표정을 짓는다.
그렇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해선 안 된다. 실제로 변두리 나이트클럽에 가보면 이 여자 저 여자 모조리 꼬시는 ‘선수’들은 나처럼 잘생기고 고독한 킬리만자로의 표범 같은 남자가 아니라, 한 번 딱 보고 돌아서면 전혀 떠오르질 않는 ‘장삼이사’형의 지극히 평범한 얼굴의 남자들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내가 경험한 차승원도 그러하다. 그는 언뜻 대범하고 거칠게 보이지만 실제론 소심하다 싶을 정도로 섬세하고, 감성적이며, 다정하고, 삐치기도 하며, 자기 일에 정성을 다한다. 사실, 그는 한때 우리나라 최고의 승률을 자랑하는 영화배우이기도 했는데, ‘신라의 달밤’(2001년), ‘라이터를 켜라’(2002년), ‘광복절 특사’(2002년), ‘선생 김봉두’(2003년), ‘귀신이 산다’(2004년), ‘혈의 누’(2005년), ‘박수칠 때 떠나라’(2005년)에서 보듯 그는 ‘국경의 남쪽’(2006년) 이후 다소의 하락세를 보이기 전까진 알고 보면 송강호 이상으로 나왔다 하면 히트하는 영화들의 주역이었던 것이다.
미디어를 대하는 그의 태도도 ‘프로’다. “난 예술가이니까 연기로 말할 뿐. 언론 인터뷰 같은 건 안 한다”거나 “헤어진 남자친구에 관한 질문은 일절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하겠다” 같은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는 어떤 배우들과 달리, 차승원은 자신이 출연한 영화에 대해 개봉 전 예매율까지 시시각각 살필 만큼 책임을 지는 태도를 보인다. 심지어 2005년 차승원이 주연하고 그의 단짝인 장진 감독이 연출한 ‘박수칠 때 떠나라’의 개봉을 앞두고 장 감독을 인터뷰하기 위해 서울 강남의 한 복국집으로 갔을 때도 나는 깜짝 놀랐다. 인터뷰 요청도 하지 않은 차승원이 장 감독을 따라 나와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타급 주연배우가 자존심 내려놓고 어떻게든 영화에 대한 관심을 높여보려는 모습은 감탄스럽다 못해 눈물겹기까지 했다.
차승원은 ‘삼시세끼’를 통해 요리솜씨뿐 아니라 대중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선물해주었다. 잉여생산, 축재(蓄財), 탐욕으로 얼룩져가는 자본주의사회에서 그저 삼시세끼를 고민하고 정성껏 조리하고 둘러앉아 함께 밥을 나눠먹는 이 단출한 행위가 얼마나 행복하고 본질적이고 사랑스러운지를 말이다. 그래서 나는 차승원이 지난해 출연했던 장진 감독의 최신작 ‘하이힐’이 흥행에 실패한 사실이 못내 아쉽다. 이 영화에서 여성이 되고 싶어 밤이면 드레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으며 트랜스젠더를 꿈꾸는 강력반 형사로 출연하는 차승원을 보고 적잖은 사람들은 ‘어울리지 않는다’ ‘징그럽다’면서 거부 반응을 보였지만, 나는 이 영화야말로 차승원의 최고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논란이 될 만한 이런 배역을 차승원이 자임했던 것은,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자기 내면 깊숙이 존재하는 ‘또 다른 나’ 혹은 어떤 단정 짓기 힘든 모성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마도 ‘하이힐’이 지금 개봉되었더라면 흥행에 크게 성공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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