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의 한 의원은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 관련 부분도 입법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푸념부터 내놓았다. 이 의원은 “이해충돌 방지 부분은 이미 통과된 ‘김영란법’과는 차원이 다른 복잡한 사안”이라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미 김영란법을 처리한 마당에 이해충돌 방지 부분만 그냥 넘어가기도 어렵게 됐다”고 했다.
국회가 3일 통과시킨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에는 정부가 2013년 8월 제출한 원안 가운데 이해충돌 방지 부분이 빠져 있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10일 기자회견에서 “원안의 이해충돌 방지 규정이 (국회에서 통과된 법에서) 빠져 일부 후퇴한 것은 아쉽게 생각한다”며 조속한 입법을 촉구했다. 권익위에서 이해충돌 방지 규정을 정비해 다시 제출하면 4월 임시국회에서부터라도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것이 정무위의 방침이다.
위헌 논란 속에서도 김영란법 처리를 강행한 국회가 이해충돌 방지 부분은 머뭇거리고 있는 것은 그만큼 예상되는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규정이 있지만 일단 공직자를 직무에서 제척(除斥)하도록 돼 있는 조항만 살펴봐도 파괴력을 짐작할 수 있다.
원안에는 제척 사유를 6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가장 범위가 넓은 조항은 ‘직무 관련자가 공직자의 4촌 이내 친족인 경우’라는 조항이다. 김영란법에 따라 갑자기 ‘공직자 등’에 포함된 필자의 4촌 이내 친족이 몇 명인지 따져봤다.
민법상 ‘친족’은 ‘배우자, 혈족 및 인척’을 가리킨다. 필자 본인의 배우자와 혈족(부모, 자녀, 형제자매와 그 배우자 및 자녀, 이 밖에 3·4촌 관계에 있는 친척과 그 배우자)이 51명이다. 인척, 즉 아내의 혈족 수도 비슷하기 때문에 다 합치면 100명에 이른다.
이들 중 상당수는 연락을 한 지 오래돼서 지금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내의 친족 가운데에는 일면식조차 없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정부 원안대로라면 이들의 직무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는 업무를 맡는 것은 불법이다. 극단적으로 ‘나도 모르게’ 법을 어겨서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되는 상황이 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업무 범위가 넓은 고위공직자와 의원, 언론사 고위 간부들은 더 황망할 것이다. 향후 논의 과정에서 직무 관련자의 범위를 좁히더라도 대통령과 국무총리, 정당의 대표·원내대표,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등이 이 법을 어기지 않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수도 있다.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등의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공직자의 부당한 권한 행사를 막아보자는 이 법의 근본 취지는 옳다. 하지만 법은 현실성이 있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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