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은 소속감을 상징하고 사람들은 깃발을 중심으로 모인다. 때로는 깃발 때문에 가슴이 울렁거리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이오지마 상륙작전에서 미 해병대원이 성조기를 꽂는 장면은 나중에 연출로 밝혀지긴 했지만 퓰리처상을 받을 만큼 감동적이었다. 깃발이 주는 집단주의의 느낌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조차 집단성은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특히 우리나라는 집단적 상징체계에 민감하다. ‘우리’라는 표현은 언어학자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줄어들 기미가 없다. 축구 A매치가 있으면 서울광장에는 수많은 시민이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나타나 대한민국을 외친다.
정부가 부처의 이미지(GI·Government Image) 통합 작업에 착수한다는 소식이다. 태극기와는 별도로 정부를 상징할 수 있는 시각 이미지가 새로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부처별로 각양각색이던 상징을 통일하기 위해서다. 내년부터 중앙행정기관, 특별지방행정기관 등에 순서대로 적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상징은 정부 기관의 건물 옥상에 깃발 형식으로도 휘날리게 될 것이다.
작년 세월호 사고 이후 우리는 관(官)피아 해(海)피아 군(軍)피아 등 마피아의 행태로 운영돼 온 공직 사회의 단면을 목격했다. 각 부처의 공무원들이 네트워크를 사적으로 활용해 왔다는 사실에 놀랐다. 태극기 이외에 그렇게 많은 깃발이 존재하는지 몰랐다. 어떤 ‘피아’에도 속하지 못한 국민 대다수는 고립무원의 느낌, 보호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정부 부처의 로고가 왜 제각각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목표와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본질적인 이유부터 전통적인 문양이 없었다는 점과 세련되지 못해서라는 기술적인 문제도 이유로 제시된다. 이미지보다는 텍스트를 중시하는 문화 때문에 각 부처에서 이름을 상징적으로 표현해서 사용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가 바뀌면 간판을 새로 설치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있다.
정부 상징 통합 작업은 대한민국 정부의 대외적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것이지만 공무원들에게 깃발을 돌려주는 작업이기도 하다. 지금처럼 부처별로 ‘다양한’ 깃발을 건물에 게양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민간 회사인지,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공공기관인지, 깃발만 봐도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 역시 국민의 알권리다. 나아가 GI만 통합할 게 아니라 국민을 위해 협업하고 봉사하는 마음까지 통합했으면 좋겠다. 그게 정부 본연의 역할이니까.
우려되는 점도 없지 않다. 시각 아이덴티티나 상징체계에는 철학과 이념, 비전이 녹아들어야 한다. 하지만 역사 인식과 국가 정체성에 대한 갑론을박이 끝나지 않은 현 정치 수준에서 과연 제대로 된 깃발 문양이 나올 수 있을까. 혹시 전문 디자이너가 아닌 고위 관료가 낸 아이디어가 우격다짐처럼 반영돼 엉성한 디자인이 나오지는 않을까. 이런 점만 피한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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