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시선]이승만 대통령 탄생 140주년을 맞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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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주 전 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 사무총장·정치학 박사
김일주 전 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 사무총장·정치학 박사
26일이면 우남(雩南) 이승만이 탄생한 지 140년이 된다.

그의 삶은 드라마다. 투옥 중 어느 날 갑자기 출국해 한 국가의 외교관이 된다. 상하이(上海)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되고는 얼마 안 되어 탄핵돼 밀려나기도 한다. 흥미로운 대목은 그의 예견이나 판단이 시간이 지나면 거의 옳은 것으로 결론이 난다는 점이다. 일본이 미국을 침략할 것이라는 그의 예견은 1941년 12월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함으로써 적중했다. 그는 1923년 ‘태평양잡지’에 게재된 논문 ‘공산당의 당부당’을 통해 소련 공산주의의 몰락과 민주주의의 승리를 예견했다. 이것도 시간이 지나자 옳은 주장으로 결론이 났다. 우남은 공산주의의 몰락을 예견한 당대의 거의 유일한 세계적 지식인이었다.

1920년대 임정은 독립 방략을 둘러싸고 ‘외교독립론’과 ‘무장투쟁론’의 두 세력으로 크게 나뉘었다. 이승만은 무장투쟁의 시기상조를 주장하며 줄기차게 외교 영역의 확대를 주장했고 결국 이 주장이 화근이 돼 대통령직에서 탄핵된다.

10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임정의 두 세력 간 방략의 차이점은 현재까지도 한반도 갈등 현장에서 시간을 초월해 골 깊이 자리 잡고 있음이 감지된다. 그것은 임정 시대의 ‘외교론’과 ‘무장투쟁론’의 전통이 38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했음을 말한다. 이승만의 외교론은 빛을 발해 대한민국을 탄생시켰고 6·25전쟁 때는 유엔을 끌어들여 국가를 지켜냈다.

임정의 무장투쟁론은 북쪽의 김일성이 차용해 갔다. 김일성이야말로 항일 무장투쟁의 민족적 적자이기 때문에 한반도의 정통성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 있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이승만 외교론의 압권은 1948년 12월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유엔의 승인이다. 결국 이승만의 ‘외교론’이 ‘무장투쟁론’을 제압하고 세계가 인정하는 결과물을 만든 셈이다. 반면 김일성이 끌어다 쓴 무장투쟁론 추종자들은 해방 3년의 공간 속에서 투쟁 대상을 일제에서 미국으로 바꿔 당시 한민당과 각을 세우며 투쟁을 이어가다 사라졌다.

이승만 건국대통령 기념관을 건립해 역사의 망각으로부터 후손들을 보호해야만 한다.

김일주 전 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 사무총장·정치학 박사
#이승만#대통령#탄생#14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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