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종석]꽃보다 정상?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일 03시 00분


이종석 정책사회부 기자
이종석 정책사회부 기자
완연한 봄이다.

3월 중순 제주 서귀포에서 가장 먼저 망울을 터뜨린 개나리가 차츰 밀고 올라오더니 지금은 서울에서도 흐드러지게 핀다. 남부지방에서는 벚꽃도 이미 푸지게 피었다. 이제 곧 서울을 포함한 중부지방에서도 벚꽃이 절정에 이를 모양새다.

사철 중 꽃이 안 피는 계절이야 없지만, 그래도 ‘꽃 하면 봄이고, 봄 하면 꽃’이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도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이고, 윤승희의 ‘제비처럼’도 “꽃피는 봄이 오면 내 곁으로 온다고…” 아닌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최근 상춘객(賞春客)을 위해 봄꽃 구경하기 좋은 시기와 군락지를 공원별로 정리해 소개했다. 4월 초 북한산 둘레길 평창마을길 구간에서는 만개한 산벚나무를,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길에서는 너도바람꽃, 가야산 해인사∼마애불삼거리 탐방로 구간에서는 얼레지를 눈에 담을 수 있다고 한다.

4월 중순이면 내장산 백양계곡 일대에서 피나물을, 설악산 백담사 일대에서는 자주색 처녀치마를 볼 수 있고 4월 말 무렵엔 월출산 무위사 자연관찰로에서 할미꽃, 속리산 세심정 근처에서 노랑제비꽃을 감상할 수 있다.

그런데 공단이 꽃구경하기에 좋은 때와 장소를 탐방객들에게 알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봄꽃 보러 많이 오세요∼’ 하는 그런 뜻이 아니다. 이렇게 알리지 않아도 봄에는 공원 탐방객이 차고 넘친다. 그럼 봄꽃 개화 시기와 장소를 알린 이유가 뭘까? 소개한 장소들을 찬찬히 뜯어보면 짐작이 간다. 국립공원 내 봄꽃 군락지로 소개한 60여 곳 대부분이 낮은 지대에 있다. 봄꽃이 저지대에서만 필 리는 없는데….

소개된 곳 대부분이 저지대인 데는 다 사정이 있다. 등산객 대부분이 정상(頂上)까지 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산허리도 산이고, 산자락도 산인데, 어쩌다 그리 됐는지 기를 쓰고 꼭대기까지 밟고 내려와야 등산을 제대로 한 걸로 여기는 이상한 산행 문화가 깊게 배었다는 것. 공단이 등산객들에게 물었더니 북한산에서는 열에 여덟, 계룡산에서는 열에 일곱이 정상까지 갔다 오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고봉이 해발 1915m(천왕봉)나 되는 지리산과 1708m(대청봉)인 설악산에서도 둘 중 한 명은 정상을 찍고 내려왔다. 정상(향적봉·1614m) 바로 턱밑인 설천봉(1520m)까지 곤돌라가 다니는 덕유산은 정상 탐방 등산객 비율이 90%를 넘는다. 이 경우는 등산이라고 하기도 민망하다.

이러다 보니 “등산객이 몰리는 주말에는 산 정상부에 탐방 압력이 가중되고 훼손 우려도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게 공단 측의 설명이다. 공단은 “봄꽃 군락지 훼손을 감수하면서까지 개화 시기와 장소를 알린 건 저지대 위주의 수평탐방을 유도해 정상 정복에 치우친 탐방 행태를 조금이나마 바꿔 보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런 바람대로 저지대 봄꽃 감상에 넉넉히 만족하고 산 아래로 발길을 돌리는 탐방객들이 많으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고 꽃은 꽃대로 시달리고, 정상은 정상대로 부대끼면 낭패다.

이종석 정책사회부 기자 wing@donga.com
#봄꽃#정상#개나리#벚꽃#상춘객#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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