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2일간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마치고 오늘 오전 귀국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매일 주사와 링거를 맞으며 일정을 강행군했다”고 했지만 국내 상황도 링거를 맞아야 할 정도로 만신창이다. 박 대통령이 나서서 정리하고 처리해야 할 국내외 현안이 산적해 있다.
우선 시급한 것이 사실상 국무총리 부재 상황을 끝내는 일이다. ‘성완종 게이트’ 파문으로 이완구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지 일주일이나 됐다. 박 대통령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표만 수리해선 안 될 것이다.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 다수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됐고, 더구나 총리는 신망까지 잃어 취임 석 달도 안 돼 사퇴하는 데 대해 국민 앞에 송구한 마음을 밝혀야 한다. 후임 총리 인선에 박차를 가하되 이번에는 ‘낡은 수첩’을 덮고 도덕성과 통합적 능력을 갖춘 후보자를 찾기 바란다.
박 대통령은 중남미 순방 전 성완종 리스트에 대해 “진실 규명에 도움이 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특검 수용 의사를 밝혔다. 이후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국회에서 “청와대에서 수사 상황 보고를 요구할 수도 있겠지만 자제를 요청할 것”이라고 한 말은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려면 대통령민정수석을 비롯해 정권의 어느 누구도 수사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박 대통령이 육성으로 밝힘으로써 검찰의 성역 없는 수사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산적한 현안 중 공무원연금 개혁과 민생법안에 대해 박 대통령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처리를 ‘주문’했고 국회에 ‘협조’를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입법부에 숙제 맡기듯이 할 것이 아니라 박 대통령부터 팔을 걷어붙이고 국회와 국민 설득에 나서야 한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국가개조, 경제혁신, 4대 구조개혁을 외친 데 이어 해외에선 ‘정치개혁’(한국 시간 21일 페루) ‘사회개혁’(22일 칠레)까지 들고 나왔다. 개혁 대상을 많이 내놓는다고 해서 국민이 박수를 치는 것은 아니다. 전방위로 ‘개혁 으름장’을 놓는 대통령이 아니라 우선순위에 따라 한 가지라도 제대로 완수해내는 유능한 대통령을 국민은 원하는 것이다.
외교도 이러다간 동북아의 외톨이가 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불안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어제 미일(美日) 신(新)밀월시대를 여는 방미(訪美) 외교를 시작했다. 박 대통령이 긴급하지 않은 중남미 순방을 하는 동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총리가 불과 5개월여 만에 다시 반둥회의 60주년 기념 자리에서 정상회담을 갖는 등 중일(中日)관계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과거사와 원칙에만 얽매이지 않고 국익에 따른 유연한 외교적 해법을 내놓을지 온 나라가 박 대통령을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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