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 개혁은 국회 본회의 통과 여부와 상관없이 실패다. 그럼 노동개혁은 성공할 것인가. 공공부문, 금융, 교육 개혁은 또 어떨 것인가. 장담할 수 없다. 쟁점 안건은 모두 여야 합의로 처리하도록 한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이 나라는 개혁이 불가능한 나라가 됐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개혁이란 기득권층의 반발을 부르기 마련이다. 그런 개혁이 합의로 가능하다는 생각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사회학에서 사회를 보는 두 가지 상반된 시각이 있다. 사회가 합의로 돌아간다는 통합 모형은 탤컷 파슨스 같은 보수적 학자들의 주장이다. 개혁적 학자들은 사회는 일부 구성원들이 다른 구성원들을 강제하는 것에 바탕을 둔다는 갈등 모형을 택한다. 다만 그 강제가 소수가 다수에게 강제하는 것이면 권위주의이고, 다수가 소수에게 강제하는 것이면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합의의 비민주적 대가
합의가 과반을 넘어 일치에 접근할수록 합의에 걸리는 시간은 길어지고 비용은 늘어난다. ‘불어 터진 국수’란 비판은 다름 아니라 합의에 걸린 과도한 시간을 말한다. 더 큰 문제는 비용, 바로 합의를 위한 흥정에 드는 비용이다. 공무원연금 개혁 합의는 그 자체로도 초라하지만 뒷문으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국민연금 수정안을 끌어들였다. 사실 합의는 단지 시간이 걸려 성사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걸리는 흥정 끝에 결국 대가를 지불하기 때문에 성사되는 것이다. 그 대가가 주로 법안 연계 처리다. 이런 방식으로 50% 지지도 얻지 못하는 비(非)민주적 안건이 민주적 안건에 섞여 관철된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은 정부와 여당에서 누리과정 예산 집행을 위한 지방재정법 개정을 요구하자 이를 통과시켜 주는 대가로 광역의원 유급보좌관 신설안을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 지방의원은 ‘무보수 명예직’으로 출발했지만 2006년부터는 연 수천만 원씩 의정비를 받고 있다. 지방의원은 국회의원과 달리 겸직도 제한 없이 가능하다. 그런 마당에 유급 보좌관까지 둔다는 데 동의할 사람은 별로 없다. 더러운 법안 연계 처리는 이제 상습적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야 합의가 소수가 다수에게 의사를 강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의 미끼를 던진 것은 새정치연합이지만 그걸 덥석 문 것은 새누리당 쇄신파들이다. 그러나 궁극적 책임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이들의 행동을 뒤에서 바라보기만 하고 제동을 걸지 않은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고 할 것이다. 지금 박 대통령은 국회를 비판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을 비판해야 하고, 새누리당은 새정치연합을 비판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비판해야 한다.
단순 과반으로 돌아가야
여야 합의가 민주주의를 보장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민주주의를 저해한다는 게 드러나고 있다. 소수자의 보호가 특별히 요구되는 사안이 아닌 한, 단순 과반이 민주주의를 가장 확실히 보장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거의 모든 나라의 국회가 단순 과반을 의결 방식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개혁 불가능 국가에서 벗어나려면 이 단순 과반의 민주주의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길이 막혀 있다. 건너올 수는 있었는데 건너갈 수는 없다. 여야 합의를 만든 것은 단순 과반의 의결로 가능했지만 단순 과반으로 되돌리는 것은 여야 합의의 의결로만 가능하다. 국회 스스로 그런 의결을 할 가능성은 없다. 헌법재판소는 되돌릴 수 있을까. 쉽지 않다. 빠져나올 길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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