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시중에 떠돌던 우스갯소리로 “한국 정치의 3대 불가사의는 안철수의 새정치,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 김정은의 속마음”이라는 말이 있었다. 여기에 최근 하나 더 늘어난 것이 천정배의 ‘뉴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아닐까 싶다.
천 의원은 어제 국립서울현충원의 DJ 묘소를 참배한 뒤 “뉴 DJ를 모아서 새정치민주연합과의 경쟁구도를 만들어 호남 주민에게 실질적 선택권을 드리겠다”고 했다. ‘뉴 DJ가 어떤 사람들이냐’는 질문에 그는 “DJ를 이을 만한 실력 있고, 개혁적이고, 특별히 국민을 섬기는 그런 자세를 가진 인재들”이라고 말한다. “보안법 폐지” 외치던 千
정치권에서 ‘뉴 DJ’라는 용어를 처음 만든 이는 DJ의 처조카인 이영작 박사다. 1992년 대선 실패 이후 닉슨 대통령이 재선 선거운동 때 사용한 ‘뉴 닉슨 전략’을 본떠 만든 1997년 대선 전략이었다. 호남과 진보개혁 세력이라는 지지층의 한계를 뛰어넘어 충청과 영남 보수에도 어필할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려는 것이었다. 뉴 DJ가 아니더라도 DJ 정치 역정 자체가 끊임없이 새로운 세력을 영입하고 연합하여 이념적 지역적 기반을 넓히는 확장형이었다.
천 의원도 1996년 총선을 앞두고 신기남 정동영 정세균 김한길 추미애 등과 함께 수혈된 ‘DJ 키즈’의 일원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친노의 선두주자가 됐고,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 뒤 DJ당(새천년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만들면서 과거의 동지들을 “지역정치에 찌든 낡은 정치세력”으로 몰아붙였다. 그런 천 의원이 ‘뉴 DJ’를 말하니 생뚱맞게 들린다.
2004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시절 천 의원은 국가보안법 폐지 추진에 앞장섰다. 법무부 장관이던 2005년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의 강정구 교수에 대해 불구속 수사를 지휘하면서 김종빈 당시 검찰총장을 물러나게 했다. 국무위원으로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위한 합동담화문에 이름을 올렸으면서도 이명박 정부 때는 한미 FTA를 강력히 반대하며 단식 농성까지 했다.
DJ는 2007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의 예방을 받고 “정부가 확고한 자신감을 갖고 한미 FTA를 통한 국가의 이익을 국민께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할 만큼 FTA를 강력히 지지한 정치인이었다. 자신이 국보법으로 처벌받은 적이 있었지만 재임 중 여당에서 국보법 폐지론이 대두됐을 때도 끝내 폐지하지 않았다. 새정치보다 모호한 뉴 DJ
천 의원이 정치 외교안보, 경제에서 대체 DJ의 무엇을 계승하고 무엇을 새롭게 하겠다는 것인지 분명히 밝히지 못한 채 뉴 DJ를 말하는 것은 호남지역주의를 자극해 정치적 이득을 챙기기 위한 상술 아니냐는 의구심을 살 만하다. 6일 동교동 DJ 사저에서 천 의원의 예방을 받은 이희호 여사가 “DJ 정신을 계승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감사하긴 하지만 남편 이름이 정쟁에 오르내리지 않게 해달라”고 한마디 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뉴 DJ 플랜’의 창안자였던 이영작 박사는 “지금 DJ가 살아온다 해도 옛날식으로 한다면 이제 호남도 따라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누구의 아바타가 아니라, 문재인 대표의 새정치민주연합에 절망감을 느끼고 변화를 요구하는 호남과 야권 지지자들에게 분명한 비전과 명분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천 의원의 ‘뉴 DJ’는 안철수의 새정치보다 유통기한이 짧은 ‘무늬만 신상품’에 그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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