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의 시사讀說]머리 둘 달린 ‘세계 희귀종 국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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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인기 있는 어린이 책 중에 ‘두리틀(Dolittle) 의사의 이야기’란 책이 있다. 이 책에 ‘푸시미풀유(push-me-pull-you)’라는 동물이 나온다. 머리가 둘 달려 있고 그 머리들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진행하려고 할 경우 뜻대로 움직이기 힘든 상상의 동물이다. 국회선진화법하의 국회는 푸시미풀유를 닮았다. 그 무능함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do-little)는 뜻의 주인공 의사 이름과도 묘하게 통한다.

국회가 도입한 ‘여야 합의제’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제도다. 학자들은 의회 민주주의를 영국식 다수제와 유럽대륙식 합의제로 구별하곤 한다. 둘 다 단순 다수결을 토대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전혀 다를 바 없다. 다만 유럽대륙식 합의제는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한 제1당이나 제2당이 군소정당을 끌어들여 과반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영국식 다수제와 다르다. 멀쩡한 과반 의석 정당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제도는 어느 쪽으로도 분류할 수 없는, 푸시미풀유만큼 기괴한 것이다.


한쪽은 밀고, 한쪽은 당기고


둘 이상의 정당이 합해 과반을 만드는 것을 의원내각제에서 연정이라고 한다. 연정은 제1당이나 제2당이 군소정당을 끌어들여 과반을 만드는 소(小)연정이 일반적이다. 간혹 군소정당을 끌어들여도 과반을 만들 수 없는 상황이 있다. 이때 제1당과 제2당이 합해 과반을 만드는 것을 대(大)연정이라고 한다. 대연정은 유럽대륙에서도 독일권 외에는 찾아보기 힘든 예외적인 것인데 국회선진화법은 그런 대연정을 상설화했다.

연정은 소연정이든 대연정이든 연정에 앞서 당대당(黨對黨) 협상을 통해 임기 중 시행할 정책 전반에 대해 사전에 합의한다. 이것을 연정 협상이라고 부른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연정 자체가 성립하지 않고 다시 총선을 치르기도 한다. 그러나 국회선진화법하의 사이비 대연정은 여야가 사안마다 협의를 해야 하고, 합의가 안 된다고 해서 다른 해결책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비생산적인 제도다.

푸시미풀유는 머리가 둘 달려 있어 뜻대로 움직이기 힘들 수 있다고 앞에서 말했지만 이 경우 ‘뜻대로’란 말은 애매모호한 데가 있다. 동화에는 머리 둘 달린 동물을 처음 본 누군가가 저 동물도 한마음을 가질 수 있느냐고 묻는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다행히 푸시미풀유는 천성이 착한 동물이기 때문에 뜻을 하나로 모으는 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국회는 머리 둘이 하나는 밀고(push), 하나는 당기는(pull) 집단이어서 선의에 의한 합의가 쉽지 않다.

할 일 안하고, 안할 일 하고

여야가 5월 임시국회에서 공무원연금법과 관련해 한 일이라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를 명기하되 결정된 수치가 아니라 논의할 수치로 처리한 것이다. 공무원연금도 이번 국회에서 통과시키지 않으면 내년 총선까지의 정치 일정상 다시 다루기가 힘들다고 하는 판에, 더 결론을 내리기 힘든 국민연금을 놓고 갑론을박(甲論乙駁)하다 보면 시급한 사학연금과 군인연금 개혁은 물 건너갈 게 뻔하다.

왜 갖다 붙였는지 국민은 이해할 수 없는 국민연금이란 혹을 떼 낸 것도 아니고, ‘무늬만 개혁’인 공무원연금 합의안을 뜯어고친 것도 아니고, 고작 이 정도 하려고 또 한 달을 보냈나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하라는 공무원연금 개혁은 똑바로 안 하면서, 시키지도 않은 국민연금 개혁에는 열심인 국회가 삐딱한 사춘기 청소년처럼 고약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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