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한기흥]‘희망 스크럼’의 셈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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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최루탄을 터뜨리며 강제 진압에 나서면 노랫소리는 더욱 커졌다. “흔들리지 흔들리지 않게/흔들리지 흔들리지 않게/물가에 심어진 나무같이 흔들리지 않게….” 동료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팔짱을 끼거나 어깨동무를 한 팔에 더욱 힘이 들어갔던가. ‘민주주의’를 외치는 함성이 절실했던 시대였기에. 미국의 포크 가수 존 바에즈가 부른 ‘No Nos Moveran’이 원곡인 ‘흔들리지 않게’는 스크럼을 짜고 시위할 때 딱 맞는 노래인 듯했다. 딱히 운동권이 아니었어도 질풍노도의 1970, 80년대에 청춘을 보낸 세대들에겐 낯익은 풍경, 귀에 익은 노래다.

▷터널의 끝이 안 보이는 경제난 때문에 젊은이들이 축 처진 어깨를 펴기 힘들다. 어렵사리 학교를 나와 일자리를 구하고 결혼해도 독립하자니 한숨부터 나온다. 어쩔 수 없이 부모와 한집에서 사는 젊은 부부들이 적지 않다. 소득도 없이 완전히 얹혀사는 캥거루족과는 달리 번 돈의 일부를 생활비로 내거나 부모에게 용돈을 드리면서 모두 똘똘 뭉쳐 공생하는 가족이다. 2000년대 이후 일본에서 주목받았던 ‘스크럼 가족’이 이제 한국에서도 생소하지 않다.

▷럭비는 한국에선 비인기 종목이지만 실제로 보면 가슴이 짜릿할 만큼 역동적이다. 남자들의 투지를 불태우고 단결력을 북돋우는 데 그만이다. 럭비에서 사소한 반칙이 일어나면 팔짱을 꼭 끼고 밀집한 양 팀 선수들이 하나의 집단을 형성한 뒤 그 가운데 들어온 공을 발로 빼앗는 스크럼 대형을 짠다. 엉뚱하게도 한국에선 몸싸움을 하는 시위 방법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당내 대선주자급 인사들에게 ‘희망 스크럼’을 제안했으나 반응이 신통치 않다. 함께 전면에 나서 당의 변화와 혁신을 모색하자는 취지이지만 안철수 새정치연합 의원은 “내용도 모른 채 동참하기는 어렵다”며 거절했다. 스크럼은 공통의 목표 아래 단결할수록 힘이 붙는다. 대선을 앞두고 각자 속셈이 다른 정치인들이 ‘누구를 위한 정권교체냐’를 따지지 않고 사심 없이 스크럼을 짤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
#희망 스크럼#흔들리지 않게#스크럼 가족#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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