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표현에서 가장 본능적이고 적극적인 것이 신체 접촉이다. 예컨대, 애완견이 사랑을 표시하는 방식은 노골적인데 한편 감동적이다. 혀를 대고 사랑하는 대상의 신체를 정성껏 핥는다. 그런데 언어 구사에 능한 인간도 가장 친밀한 사랑을 위해선 결국 입과 몸을 활용한다.
제닌 안토니(Janine Antoni)는 자신의 몸을 활용하는 퍼포먼스로 잘 알려진 작가이다. 그의 ‘핥기와 비누로 씻기(Lick and Lather)’(1993년·그림)는 초콜릿과 비누로 자신의 모습을 본떠 만든 흉상 조각이다. 총 14개의 조각들 중 7개는 초콜릿, 나머지 7개는 비누로 만들었는데, 작가는 이 조각들 중 초콜릿 조각은 혀로 핥고 비누 조각은 욕조에서 몸에 비벼 마모시키면서 ‘다시-조각(re-sculpting)’을 했다.
피부와 머리카락 등 디테일까지 섬세한 초콜릿 조각상을 핥고 또 완벽한 외양의 비누 상을 비벼서 그 외관을 훼손시킨다. 자신의 형상을 자신의 몸으로 소멸시키는 과정은 과도한 자기애(自己愛)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이를 ‘애증의 관계(love-hate relationship)’라 불렀다. 이는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사랑에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개별성을 구축하고 사회적으로 주장하는 게 삶이라면, 이를 뭉뚱그려 남들과 비슷해지는 것은 죽음을 향한 과정이다. 작가는 자신의 흉상을 정교히 만들고 서서히 마모시키는 과정에서 부인할 수 없는 삶의 여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영양을 섭취하고 목욕하는 가장 사적인 행위를 통해서 말이다.
여기서 초콜릿은 욕망을, 비누는 청결을 상징하는데 이 두 요소는 여성과 직결되는 모티프다. 안토니는 여성에 대한 문화적 상징을 자신의 온몸(여체)으로 지우고 또다시 만든다. 그는 초콜릿뿐 아니라 라드(요리용 지방덩어리) 등을 입으로 갉거나 씹어 립스틱 등 오브제를 만들었고 자신의 눈썹을 붓 삼아 화면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또한 긴 머리카락을 검은색 염색액에 담가 마루를 닦기도 하였다. 여성성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온몸으로 드러내 우리에게 대면시킨다.
20여 년 전 베니스 비엔날레에 전시된 이 작품은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29세 젊은 나이에 작가는 퍼포먼스가 포함된 조각을 제시했던 것이다. 사랑의 양면성을 알게 하는 ‘개념조각’이면서도 작가의 행위가 천천히 개입된 ‘과정미술’로서의 특징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인간과 삶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한참 느끼게 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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