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홍완석]유라시아 1만4400km 질주하는 ‘한국夢’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5일 03시 00분


홍완석 한국외국어대 교수 국제지역대학장
홍완석 한국외국어대 교수 국제지역대학장
유라시아 공간에서 ‘신대륙주의’가 움트고 있다. 오랜 기간 해양세력에 압도되었던 중국, 러시아, 인도, 터키 등 대륙의 신흥 경제대국들이 세계무역과 투자 발전의 기관차 역할을 하고 이들이 에너지와 무역을 매개로 통합의 길을 걸으면서 유라시아 대륙이 국제 정치·경제의 중심무대가 되어가고 있는 현상을 일컫는다. 말하자면 13∼14세기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 시대 이후 유럽형 세계체제가 유라시아형 세계체제로 복구되어 가는 형세다.

눈앞에 다가온 新유라시아시대

큰 흐름에서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도 신대륙주의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할 수 있다. 물류와 교통 네트워크의 연계 및 확장을 통해 대륙과의 유기적인 통합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0년 동안 한국은 남북 분단의 인질이 되어 광활한 대륙으로 향하는 접근 통로가 차단되었다. 북한에 가로막혀 대륙과 해양을 잇는 ‘랜드브리지(land bridge)’로서의 지정학적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채 국가적 번영의 명운을 해양에서 찾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거대한 역동성을 뿜어내는 신유라시아 시대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데 우리만 동북아 귀퉁이에서 마냥 고립의 섬으로 남아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유라시아 대륙과의 인위적인 분절을 극복하기 위한 자구적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신대륙주의 시대가 제공하는 경제적 번영과 민족적 웅비의 기회를 잘 포착해 현재화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유라시아 대륙 내부와의 유기성을 복원하는 가운데 지정학적, 지경학적 연계성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태동한 중요한 배경일 것이다.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한반도 분단의 고통을 스스로 치유하고자 하는 의지와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숨 막히는 세계관을 과감히 극복하고자 하는 의미도 있다. 중국의 경제 울타리에도, 미국의 안보 우산에도 무한정 편승하지 않겠다는 심오한 뜻도 담겨 있다고 본다.

한국경제의 출구이자 블루오션

신대륙주의의 출현은 21세기 한국에 다양한 ‘기회의 창’을 열어준다. 우선 저성장·저투자 늪에 빠진 한국 경제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다. 지구 육지 면적의 40%, 세계 인구의 70%,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60%를 차지하는 유라시아 대륙은 한국 제품의 거대 수출시장이다. 그뿐만 아니라 에너지 자원의 안정적 공급원으로서, 정보통신기술(ICT)로 대표되는 디지털 한국의 실크로드로서, 중동을 대신하는 건설·플랜트시장으로서 위축된 한국 경제의 출구이자 새로운 블루오션이다.

한반도 긴장 완화에도 일조

유라시아의 통합성이 증대되면 그것이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해 한반도 긴장 완화와 통일 기반 조성에도 도움이 된다. 북-중-러 접경지역에 국제경제특구를 설립하는 방안이나 작년 포스코가 시베리아산 석탄을 북한 나진항을 통해 수입한 경우가 적절한 사례가 될 것이다.

유라시아는 한국이 국제적 위상을 강화하고 중견국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기도 하다. 문화 융성과 한류의 확산, 웅혼한 대륙적 정체성의 회복, 해외 청년일자리 창출 등의 기회도 부여한다. 이 모든 국가적 염원을 외교정책 ‘용기’에 담은 것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다. 그런 맥락에서 일대일로(一帶一路)가 중국몽(中國夢)이라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한국몽(韓國夢)이다.

한국몽 실현을 가속화하기 위해 ‘유라시아 친선특급’이라 명명된 정부 차원의 이벤트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기획되었다. 각계각층 인사로 구성된 200여 명의 국민원정대가 참여하는 가운데 14일 한국을 떠났다. 다음 달 2일까지 19박 20일간 중국, 몽골과 러시아, 폴란드를 거쳐 독일까지 총 1만4400km의 거리를 철의 실크로드를 타고 질주한다.

대륙의 꿈을 실은 이번 행사가 통일을 넘어 팍스 코리아나 시대의 구현을 앞당기는 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홍완석 한국외국어대 교수·국제지역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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